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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Jul 19. 2022

나는 영원히 당신의 것

나는 영원히 당신의 것     


동주의 과수원에서 복사꽃이 휘날리면 진정한 봄이 온다. 사람들은 연분홍빛 꽃만 본다. 꽃이 어떻게 피는지 꽃이 어떻게 지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 어여쁜 도화꽃이 지고 열매를 맺으면 달콤한 과일만 본다. 어떻게 열매가 맺어 익었는지에 대한 관심 역시 없다.     

 

“나는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복사꽃 꽃말이다. 사랑의 노예, 희망 등 여러 가지 꽃말 중 하나다. 과수원의 복숭아나무는 영원히 동주네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송두리째 파헤쳐져야 할 운명에 처했을 때도 살아났다. 동주네 자식들의 급격한 반대에도 여전히 가업처럼 이어지고 있다. 나는 알게 되었다. 무엇이 ‘영원히 내 것이 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내가 그 무엇의 노예가 되는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겨울이면 복숭아나무 가지치기를 했다. 나무의 밑동을 동그랗게 파고 퇴비도 주었다. 그러는 사이 서서히 나무들이 움틀 준비를 한다. 한쪽에 심은 매화나무가 꽃을 피워 은근한 향기를 휘날리면 복숭아나무도 서둘러 꽃피울 준비를 마친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화사한 연분홍빛 꽃망울을 터뜨리고 유혹의 눈빛을 보낸다. 사람들은 그 고운 빛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의 노예가 된다.     


복숭아꽃은 신선들이 사는 천상의 무릉도원에 피는 신비스러운 꽃이다. 도원결의란 사자성어도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관우, 장비가 장비의 집 뒤에 있는 복숭아 동산에서 제사를 지내고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름다운 복사꽃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복숭아나무는 집안에 심지 않는다는 설이 있다.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제사를 중시하는 우리 선조들은 그런 것을 지켰다. 제사상에 올라갈 수 없는 과일이 복숭아다. 이쁜 빛깔과 달콤한 맛을 가진 복숭아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복숭아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복사꽃, 도화(桃花)꽃이라고도 부른다. 사주 도화(桃花)살이란 말이 있다. 복숭아꽃처럼 섹시하고 이쁜 여자를 뜻하는 살로 예전에는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연예인들은 기본적으로 도화살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요즘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살이라고도 한다.     


긍정의 의미든 부정의 의미든 어릴 적 나는 복숭아꽃이 좋았다. 사회인이 되고 복숭아꽃에서 멀어질 때도 엄마 주례는 꽃이 필 때면 전화해서 “꽃이 피었다”고 자랑했다. 사진 찍으러 집에 다녀가라고 복숭아꽃이 핀 과수원으로 나를 불러들였다. 아무리 바빠도 모든 일을 미루고 사랑의 노예가 되어버린 주례의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을 찍기 위해 과수원으로 가곤 했다.      


아름다운 것은 잠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붉고 아름다운 꽃이라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시든다는 뜻이다. 그 꽃에 취하는 것도 잠시였다. 과수원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 동주 덕분에 동주네 가족들은 과수원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물림처럼 고단한 삶이기도 했다.     


그 아름다운 꽃이 지고 열매가 맺으면 열매솎기를 했다. 나뭇가지에 열린 튼실하고 외관이 좋은 열매만 남기고 따서 버린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듯이 열매솎기는 인생의 쓴맛을 가르치는 씁쓸한 일이었다. 일찍 인생의 무상함을 체험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열매솎기가 끝나면 나무에 매달린 열매에 봉지를 씌운다.     


무럭무럭 자라난 향기롭고 달콤한 복숭아를 수확하기까지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무더운 날씨에도 장마가 지나가고 그 억센 태풍이 지나간다. 그렇게 지나가는 것들 사이로 동주와 주례의 근심이 뼛속까지 고난의 시간으로 쌓인다. 드디어 연분홍빛으로 복숭아가 익기 시작하고 동주네 가족들은 출동한다.     


7월 말에서 8월 15일까지는 정말 무더운 날씨다. 동주네 복숭아는 만생종 백도다. 동주가 직접 접목하여 나무를 키웠다. 나무 한그루 한그루에 쏟은 정성은 무슨 말로도 표현할 길이 없다. 복숭아는 털이 달려있다. 복숭아를 씻지 않고 손으로 만지면 심각한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과수원은 산지를 개간하여 만든 곳이다. 무더운 여름 그냥 오르내리기도 불편한데 복숭아 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산 구릉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복숭아가 익어가는 절정의 시간은 여름이다. 다른 사람들은 휴가철이라고 해서 산으로 바다로 휴식을 즐기러 떠나는데 동주네 가족들은 과수원에 앉아 뜨거운 태양과 훈김을 벗 삼아야 한다. 그 세월이 내 유년의 기억을 더듬으면 오십 년이 되어간다. 웃으며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다. 친구들이 휴가 계획을 짜면서 내게 어디로 휴가를 가느냐고 물을 때면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안 간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난감했었다. 제발 이 여름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복숭아를 폐원할 시기가 있기는 했다. FTA 체결 전에 정부에서 과수농가의 복숭아와 포도나무에 대해 일시적으로 폐원지원을 해주기로 했었다. 아버지 동주를 설득하였다. 드디어 우리도 이 여름날의 고통에서 벗어나리라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즐거운 여름휴가 계획을 짤 수 있을 줄 알았다. 꿈은 꿈으로 끝이 났다.      


“나무도 생명이 있으니 함부로 자를 수 없다”     


아버지 동주의 청천벽력 같은 말이 날아들었다. 가난을 달고 살던 유년에 우리가 밥을 먹고,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복숭아나무의 은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복숭아나무가 인연이 되어 만났던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인제 와서 모른 척할 수는 없단다. 그 무엇보다도 생명 있는 것을 어찌 파헤쳐 죽일 수 있느냐는 것이 지론이었다.     


과수원의 주인이 되겠다던 동주는 이제 과수원의 노예가 되었다.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려라.”는 말이 있다. 강을 건널 수 있게 해주었다고 무거운 배를 들고 산으로 올라갈 수는 없다. 산에 올라가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자녀들도 성장했고, 그 인연의 사람들도 더 이상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이유로 벗어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가족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나는 영원히 당신의 것”이라는 근사한 말은 사랑의 노예가 되는 일이다.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하는 동주네 자녀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짐이 되었다. 이 여름의 뜨거움에 그 무게가 더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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