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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Oct 22. 2024

삶은 여행이다

삶의 순간마다 함께하는 여행자(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삶은 여행이다          


삶은 여행이다. 우리는 혼자 자유 여행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한다. 누구와 손을 잡고 가느냐가 다를 뿐, 순간마다 함께하는 여행자들이 있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사람이나 사물 등을 대할 때 설렘과 호기심뿐만 아니라 불편함도 동반한다. 살아가는 동안 힘든 일도 있고, 기쁘고 즐거운 일도 있지만 불편한 일도 있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조금씩 다를 뿐 삶은 여행의 연속이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모의 손을 잡고 유년을 여행한다면, 학교에 입학하고서는 친구들과 선생님과 여행을 하며, 직장 생활을 할 때는 함께하는 직장 동료들과 여행을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똑같이 되풀이되는 삶의 여행에서 서로의 동반자 역할을 해 준다. 그 여행길이 마냥 즐겁고 좋은 일만 가득할 수는 없다. 여행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삶처럼 희로애락과 더불어 불편함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첫 크루즈 여행을 친구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첫, 처음이란 단어는 나이를 불문하고 설레게 한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 가지만 기어코 오고야 마는 시간이기도 하다. 함께 가자는 친구의 말에 일정을 알아보니 다행히 연휴가 끼어 있어서 흔쾌히 결정을 했다. 짧은 일정이지만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피로가 보상되는 상상은 덤이다.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 여행이란 마음을 즐겁게 하고 은근한 기대를 품게 한다.      


배에 승선하기 위한 수속 절차가 오래 걸린다. 긴 행렬은 각오한 일이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이 시간을 견뎌야 하는 불편함이 여행에 대한 환상의 날개를 조금씩 꺾는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곧 비라도 내릴 것같이 잿빛이다. 지루한 시간을 넘겨 승선을 하고 정해진 숙소에 짐을 푼다. 바다는 끊임없이 출렁인다. 수평선으로 저무는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는데 날씨 때문에 허무하게 무너진다. 크루즈 여행의 묘미는 노을과 일출을 감상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품었던 환상이 사그라든다.    

  

군산에서 산동성으로 출항하는 크루즈다. 3.5m에서 4m의 높은 파도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안내를 한다. 승선한 사람들이 1,000명 정도로 9층까지 있는 2만 톤 정도의 배로 그렇게 크지는 않다. 안내 방송을 듣자 뱃멀미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군산에서 산동성까지는 400km. 40km로 속도로 간다고 하는데 높은 파도에 앞으로 제대로 전진하지 못하고 출렁일 것을 생각하니 덜컥 걱정부터 앞서게 된다.     


출발을 기다리면서 배 구석구석을 살핀다. 생각보다 배는 크지 않았고 항구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듯하지만, 정박해 있는 배들은 파도에 출렁이고 있다. 배에서 1박, 산동성에서 1박, 돌아오는 배에서 1박이 예정되어 있다. 배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12시간 이상은 될 것이다, 먼바다로 나갈수록 파도는 높이 올라갈 것이고, 뱃멀미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커진다.      


배는 서서히 출항을 하고, 저녁을 먹는데 파도가 이는지 출렁임이 느껴진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숙소로 이동한다. 주위 사람들의 조언으로 준비해 온 신신파스를 배꼽에 붙이고 뱃멀미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될 준비를 한다. 크루즈가 출항하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높은 파도는 만난 적이 없다고 믿거나 말거나 승객들에게 언질을 준다. 앞으로 나아가지만 느릴 것이고 파도 때문에 뒤로 물러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출렁이고 출렁이다 오지 않는 아침을 맞이할 생각에 약간의 후회가 몰려든다.     


뱃멀미에 시달리면서도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수많은 생각의 행간에서 만나는 여행의 불편함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생각보다 좁은 부대시설, 끊임없이 흔들리는 배, 좁은 2층 침대. 화장실을 타고 올라오는 담배 냄새, 숙소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솟았다가 하락하는 파도가 배에 부딪히는 소리 등. 침대에 머리를 대고 누워 생각을 밀어 내면 낼수록 뱃멀미를 일으키는 원인이 많아진다.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는 더욱더 거칠어진다.     


짧은 여행의 불편함이 꿈틀대며 파도를 친다. 예측하지 못했지만 이 불편함을 이겨 내고 나면 즐거운 여행길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기에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삶 역시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좋은 일들이 더불어 온다는 것을 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대가를 지불해야 얻어지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하는 것은 그것이 또 다른 삶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배꼽에 붙인 파스의 약 기운을 믿으며 아침을 기다린다. 좀처럼 파도는 수평으로 잠들지 못하는지 배에 부딪히는 소리의 요란함은 멈출 줄 모른다. 아침이 오기는 올 것인가. 어둠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들과 교감될 수 없는 시간이 빠르게 물러나길 바란다. 잠들었지만 잠들지 못한 밤은 길고 길기만 하다. 여행의 설렘을 앗아간 이 불편함을 견뎌야 하는 일이 싫어진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려고 그러는 걸까? 예측할 수 없는 날씨지만 내일 아침이 오면 맑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다린다.     


우리의 삶이 불편하다고 포기할 수 없다. 여행 역시 불편하다고 도중하차할 수 없다. 삶도 여행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순간이 지나면 좋은 시간이 오리라는 희망이 있기에 기다린다. 기다리는 시간이 흐르고 파도가 잦아지는지 불편한 소리들이 조금씩 잠잠해진다.      


긴 기다림이 지나고 어둠이 걷히는지 멀리서부터 새벽이 열리고 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파도는 수평으로 잠들고 우리는 환희의 순간을 맞이하리라. 돌아오는 여행길에서는 불편함조차 추억의 페이지에 저장하면서 환상의 일출을 꿈꿀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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