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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Feb 19. 2024

하염없는 기다림

하염없는 기다림    

  

마음 둘 곳이 없어서일까? 늘 서성이는 아버지는 오늘도 드라이브를 하자고 하신다. 유일하게 하고 싶어 하시는 한 가지가 드라이브다. 어디로 갈 것인지 망설이다 집에서 가까운 바닷가 보성 율포로 향한다. 동면을 지나 사평면을 지나 주암댐을 달린다. 지난봄에는 물이 없어서 단수를 한다고 하여 불편했었는데 물이 가득하니 경치가 좋다. 부모님도 담수된 것을 보시고 좋아하신다. 이 도로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지난봄에 가고 오랜만에 달린다. 곧 봄이 올 것이고 꽃이 만발할 것을 상상만 해도 좋은데 연로하신 아버지가 걱정이다.     


아버지의 기억은 오락가락하신다. 좋은 날도 있고 심해지는 날도 있다. 얼마 전 반가운 뉴스를 접했다. 치매를 유발하는 ‘뇌 노폐물’ 배출 경로를 국내 연구진이 찾았다고 한다. 치매를 비롯한 신경퇴행성 뇌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새로운 토대가 될 것이라는 뉴스였다.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에 닿은 것은 잘 정돈된 묘지다. 따스한 양지쪽에 있는 묘지를 마음에 들어하신다. 묘지를 잘 관리하는 것이 조상에 대한 예라고 생각하신다. 운전을 하다 보면 경치 좋은 곳에는 묘지가 많다. 열심히 달려 율포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봄이 가까워지고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많다. 차를 주차하고 돗자리를 챙겨 부모님을 모시고 모래사장으로 들어선다.     


넓은 모래사장과 푸른 물과 파란 하늘이 탁 트여있다. 그 경치가 부모님의 어느 부분을 건드렸을까? 너무 좋다고 하신다. 돗자리를 펼치고 모래사장에 앉는다. 아이들이 모래사장을 뛰어다닌다. 뛰는 아이들의 모습이 좋다고 아버지는 얼굴이 환해지신다. 엄마는 사람들이 어디로 갔나 했더니 바닷가에 왔나 보다고 거드신다.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 모래장난을 하는 아이들, 평온한 바닷가 풍경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사진을 찍어 동생들에게 카톡으로 보냈더니 율포냐고? 묻는다. 엄마에게 답장을 하라고 하니 몇 번 해보다가 귀찮다고 하길래 톡을 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치매 취급하냐고” 한마디 하신다. 그러면서 “바다가 좋다”라고 어렵게 답장을 보내신다.      


시간이 흘러 추우시면 집에 가시자고 했더니 아버지는 더 있다가 가시겠다고 하신다. 애들이 뛰어노는 것을 보는 것도 좋고, 먼바다를 보고 있으니 좋으시단다. 아버지는 나이가 먹으면 사람이 외롭다고 하신다. 엄마가 외출을 하면 홀로 방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린단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시간이 가지 않아서 외롭다고 하시는데 가슴이 찡하다.      


나이가 먹는다는 것, 자기 몸을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 돌아오는 길 수많은 생각이 스친다. 사는 동안 단 하루라도 조금만 더 건강할 수 있길 두 손을 모아 본다. 기다리는 일도 외로움이라는 아버지는 또 언제 드라이브를 하냐며 약조를 하라고 하신다. 또 시간 내어 가시자고 약속을 한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한 구절을 되뇐다. “봄이 벚나무와 하는 것과 같은 걸 너와 함께 하기를”라는 시처럼 돌아오는 봄날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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