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는 기다림
마음 둘 곳이 없어서일까? 아버지는 오늘도 드라이브를 하자신다. 유일하게 하고 싶어 하는 게 드라이브다. 어디로 갈 것인지 망설이다 집에서 가까운 보성에 있는 바닷가 율포로 향한다. 동면을 지나 사평면을 지나 주암댐을 달린다. 지난봄에는 물 부족으로 단수하게 될까 봐 불편했었는데 물이 가득하니 경치가 좋다. 부모님도 가득 찬 물을 보고 좋아하신다. 이 도로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지난봄에 보고 오랜만에 달린다.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이고 꽃이 만발할 터이지만, 마음은 흐리다.
아버지의 기억은 오락가락하신다. 좋은 날도 있고 심해지는 날도 있다. 얼마 전 반가운 뉴스를 접했다. 치매를 유발하는 뇌 노폐물 배출 경로를 국내 연구진이 찾았다고 한다. 치매를 비롯한 신경 퇴행성 뇌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새로운 토대가 될 것이라는 뉴스였다.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드라이브할 때 아버지의 마음에 닿는 건 잘 정돈된 묘지다. 따스한 양지쪽에 있는 묘지를 좋아하신다. 묘지를 잘 관리하는 것이 조상에 대한 예라고 생각하신다. 운전하다 보면 경치 좋은 곳에는 묘지가 많다. 열심히 달려 율포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봄이 가까워지고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많다. 차를 주차하고 돗자리를 챙겨 부모님을 모시고 모래사장으로 들어선다.
넓은 모래사장, 푸른 물과 파란 하늘이 탁 트여 있다. 아름다운 경치가 부모님의 마음을 풀어놓은 듯 좋아하신다. 돗자리를 펼치고 모래사장에 앉는다. 아이들이 모래사장을 뛰어다닌다. 아버지는 얼굴이 환해진다. 엄마는 “사람들이 어디로 갔나 했더니 바닷가에 왔나 보다.”라고 거드신다.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 모래 장난을 하는 아이들, 평온한 바닷가 풍경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사진을 찍어 동생들에게 카톡으로 보냈더니 율포냐고 묻는다. 엄마께 답장을 보내라고 하자 이내 귀찮아한다. 톡 보내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말에 치매 취급하느냐고 한마디 하신다. 그러면서 “바다가 좋다.”라고 어렵게 답장을 보내신다.
추우면 집에 가자고 했더니 아버지는 더 있길 원하신다. 애들이 뛰어노는 것도, 바다를 보는 것도 좋단다. 아버지는 늙으면 외롭다고 하신다. 엄마가 외출하면 홀로 방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시간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자기 몸을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 돌아오는 길 수많은 생각이 스친다. 사는 동안 단 하루라도 조금만 더 건강할 수 있길 두 손 모아 본다. 기다리는 일도 외로움이라는 아버지는 또 언제 드라이브하냐며 약조를 하라신다. 아버지와 손가락을 걸어 약속한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한 구절을 되뇐다. “봄이 벚나무와 하는 것과 같은 걸 너와 함께하기를” 시처럼 돌아오는 봄날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