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미리 Feb 06. 2024

기억의 부재

     

휴일의 하늘은 곧 빗방울을 떨어뜨릴 것처럼 흐리다. 오늘 하루도 날마다 같은 날이지만 결코 같지 않는 날이다.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문장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우리들은 알아들었노라 고개를 끄덕인다. 집에 혼자 있게 할 수 없어 패딩을 입혀드리고 모자와 목도리를 둘러 함께 농장으로 모시고 왔다.      


동생의 부탁으로 전지를 한 나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앉아서 우리들의 느린 행동을 보고 있다. 심심할까 봐 가끔씩 “아빠! 뭐 해?”라고 큰소리로 물으면 그냥 보고 있다고만 하신다. 일을 하다가 그냥 앉아만 있는 것이 심심할까 봐 다시 물으면 “비유 맞추느라 애쓴다.”라고 하면서 웃으신다.      


나무들은 세월을 먹어 오래되었다. 어떤 나무는 칡넝쿨이 돌돌 말고 올라가 한 해를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칡넝쿨을 제거하고 전지를 하는 나무를 보며 버티는 일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또 다른 나무는 한쪽이 이미 썩어있고 나무속에는 벌레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다. 아무리 전지를 잘하고 거름을 주어도 시간이 흐르면 나무는 죽어갈 것이다.     


아버지의 뇌 기능도 저 나무들처럼 사연이 들어차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사연이 무엇이 되었든 아버지의 기억력을 저하시키고 언어 장애를 일으키는 등 문제를 만들고 있다. 우리들이 칡넝쿨처럼 아버지의 삶을 옭아 맺을 것이고, 때론 뇌 기능이 서서히 문제가 생길 때까지 자식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시느라 나무처럼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나무를 보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의 삶도 나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새삼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들이 잘 익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던 나무는 고목이 되었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빠! 뭐 해?”     


 “뭣해야! 너희들 일하는 것 감독하고 있지.”     


우리들이 잘 살라고 늘 보살피고 단속했던 아버지는 기억의 부재 속에서도 걱정을 하고 계신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흐린 하늘은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을 수 없는 눈물방울을 내려보내고 싶었을까? 나는 혼자서 알 수 없는 궁리를 한다.     


집으로 돌아와 벤저민 하디의 『퓨처셀프』를 읽는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겠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어도 괜찮다. 그냥 다시 작은 것부터 정리하기로 결정을 하는데 울컥 올라오는 것의 정체가 있다. 지금까지 그런 것처럼 들키지 않고 무던하게 살아봐야겠다.



http://aladin.kr/p/pf5X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