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끝내는 날
지인분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 입원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기에 집에서 모셨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해서 자녀가 직접 대소변을 받아 냈단다. 요즘에는 웬만하면 요양병원에 입원하는데 보기 드문 일이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승을 하직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안타까운 일이다.
퇴근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도로 정체가 심해 가는 길이 더디기만 했다. 환절기라 그런지 돌아가시는 분이 많다. 그 누구도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얼마 전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친구가 했던 말이 스친다. 연명 치료를 하게 되었는데 얼굴까지 괴사해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연명 치료 거부 동의서를 사전에 작성하면 좋은데 그럴 상황이 안 되어 가족들의 동의서를 받게 되는 등 복잡한 상황이 발생했단다. 그러면서 절대로 연명 치료는 할 것이 못 된다고 했다.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고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마음 아파했다.
의료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연명 치료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자신은 주위 사람들에게 전할 거란다. 한 달 병원비만 1,500만 원이 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명 치료를 해서 건강이 회복된다면 천 번이라도 권하겠지만 의식도 없이 연명만 하는 치료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연명 치료 거부 사전 의향서를 작성했다는 말을 가끔 듣게 된다. 우정, 노년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소풍〉이란 영화에 출연한 김영옥과 나문희 배우도 불필요한 연명 치료는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시골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실천에 옮긴다고 들었다.
복잡한 도로를 달려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모시기는 힘들었겠지만, 마지막 가는 길을 집에서 보낼 수 있어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의 차가운 병실에 비할 수 있으랴 싶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장례식장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 장이 되었다. 예를 갖추는 자리지만 어둡고 슬픈 분위기와 달리 밝게 꾸민 새로운 장례 문화도 실험 중이라고 한다. 예전 집에서 장례를 치렀던 시절이 있었다. 장례 문화가 많이 달라지긴 했다.
밤이 깊어지고 돌아오는 길 천상병 시인의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라고 했던 〈귀천〉이 맴돈다. 이 세상이 정말 아름다울까? 매스컴에 휘둘려 사느라 고단한 이 세상, 아름다울 날 오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