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사람들에 대한 나의 환상은 틀렸다
크게 아파본 적이 없던 나는
병원 시스템에 대해 전혀 몰랐고
주변에 의료 관련 종사자가 없기 때문에 관심도 없었다.
동네 내과나 이비인후과정도의 병원만 다녔던 나는
일부 불친절했던 간호사들과 그저 월급쟁이로 보였던 그분들의 헌신을 일절 알리 없었다.
병원에 입원하면서 관찰해 본 의료진들의 모습은
바깥에서 내가 상상했던
차갑고, 냉정하고, 무서울 것 같은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교수님은 회진 때 내 걱정을 해주셨고,
보호자인 엄마를 많이 다독여 주셨다.
차갑고, 냉정 하다기보단 인간적이고 다정했다.
처음 진단명을 알릴 때도 착잡한 표정으로
안타깝게도.. 이런이런 병인데
제가 최선을 다해 환자분이 완치할 수 있도록 돕겠다.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회진 때마다 컨디션이 좋아진 얼굴 볼 때마다
오늘은 좋아 보인다며 내일은 더 좋을 거다. 라며 용기도 심어주고 응원도 많이 해주셨다.
병원 시스템이 궁금해서 보게 된 ‘청춘의 국’이란 프로그램으로 전공의들이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고 공부하고 배우는지를 알고 잘해주고 싶었다.
그래봐야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성의는 두유정도 나눠주는 것이지만 늘 굶고 일한다는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를 담당했던 전공의 샘은 두 명이었는데
내가 어딘가 불편함을 호소하면 들어주고 몇 번이고 찾아와서 나를 봐주었고 그때그때 맞게 약처방을 해주었다.
교수님 회진 전에 밝은 얼굴로 찾아와
간밤에 별일은 없었는지,
전날 검사결과와 하루의 치료일정 등을 얘기해 주며
내 표정이 좋을 때는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안타까우며 걱정되는 얼굴로 세심하게 돌봐주었다.
공부도 잘하는데 인간적으로도 참 좋고 좋은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름 전문직이라고 불리는 일에 속해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상상을 깨지 않는 복장, 머리스타일, 말투, 표정 등등 나와 맞지 않아도 맞춰야 했고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더 컸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간호사 선생님들을 보며 직업이 주는 상상적 인물 적성이라 해야 하나 그런 건 없다는 게 느껴졌다.
전문적인 딱딱하고 못 알아듣는 용어와
화장을 힘들게 하고 날 돌보았다면 무서웠을 것 같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병동의 이쁨을 독차지했던 간호사 선생님은 긍정파워에너지를 전하는 사람이었다.
관찰력이 좋은 그 간호사 선생님은 누워서 말하지 못하는 환자의 불편함도 바로 캐치하고 아픔도 사르르 녹이는 상냥함과 애교라는 달란트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병실에 와서 어리바리한 나와 엄마가 이것저것 묻자 이 치료는 이렇고 저 치료는 이렇다. 며 정말 알기 쉬운 말들로 여러 번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내 앞에 계셨던 아주머니는 누워계셨고 말을 아예 못 했고 거동을 못하는 분이었다. 배우자분이 간호하는 중이었는데 어느 날 이런 대화가 들렸다.
“아버님 근데 왜 맨날 컵라면 드셔!”
“나 밥도 먹고 그래~ 오늘은 라면이 당겨서 먹는 거야”
“허 무슨 소리야~ 내가 볼 때마다 컵라면 드시는구먼! 간호하시려면 잘 먹어야 돼요~ 나가서 제대로 된 밥 좀 챙겨 드세요!”
“어머니! 눈독이고 피부도 이렇게 좋은데! 지금도 미인인데 안 아팠을 땐 얼마나 이쁘셨겠어!! 얼른 나아서 이쁘게 하구 병원 와요~”
갑자기 퇴원 날벼락 맞은 환자의 보호자분이 항의하자
“나도 안 보내고 싶어 ㅠㅠ 이렇게 해서 어떻게 퇴원시켜ㅠㅠ 진짜 내가 힘이 있으면 교수님 말리지.. 근데 교수님이
퇴원이라면 우리는 그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나도 어머니 보면 못 보내 ㅜㅠ 어떻게 저런데 보낼 수 있어 ㅠㅠ“
“아주 잠깐 요양병원 갔다가 다음에 다시 입원 잡힐 거 같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잠깐 바람 쐰다 생각하고 갔다 오세요. 내가 잘 준비해놓고 있을게”
누군가 긴급 콜을 부르면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린다.
“저 가요~ 가고 있어요~ (흥얼흥얼 노랫소리가 들린다.)”
수치가 안 좋던 환자가 갑자기 좋아졌다.
내 혈압이 잡혔을 때도 그랬다.
“오예~~~ 오늘은 정상! (덩실덩실 춤을 춘다) 축하해요”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쭉~ 그러면 좋겠어”
상처를 처치하거나 다음 일정이 무서워서
“그거 많이 아파요?”라고 물으면
“5초만 세면 끝나는 거? 무서우면 5초만 세요!”
“쫌 아프긴 할건데~~~ (겁 잔뜩 주고 하고 오면 사실 아무것도 아녔다.) 해보니까 별거 아니죠??”
목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좋아지고 많이 의지가 됐다.
병실의 할머니들의 이쁨을 독차지하는 말들이 들렸다.
“보기만 해도 싹 다 낫는 거 같아.”
“저 간호사만 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맨날 저분만 오면 좋겠어”
누가 직장에서 기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환자(손님)와 농담하는걸 격 떨어지는 짓이라며 손가락질할 텐가.
CS라며 나는 엄청 혼나고 말투도 바꾸래서 바꾸고 잘하면 기본이고 못하면(못한 것도 아니다.) 겁나게 욕먹는 직장에서 일했다.
어쩌면 내가 병든 게..
다 각자 가지고 태어난 달란트는 다른데
그걸 다른 걸로 바꾸려고 했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