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차량 2부제의 얼굴을 하고 온다

벚꽃을 놓친 4월의 기록

by 시트러스

1. 보호자 입장하셨습니다

벚꽃이 한창인 4월 초 주말. 우리 집 거실에서는 미용실 놀이가 한창이었다.

"혼자 오셨어요?" 미용실이 맞긴 한 거겠지?

"보호자랑 왔어요."


8살 쌍둥이 중 두희가 수건을 목에 두르고 의자에 앉았다. 세희는 빗과 장난감 가위를 들었다.

"몇 살이에요?"

"8살."

"안니, 보호자 몇 살이냐고요?" 이 집 미용실은 나이 제한이 있나?

"육십사 살이요."

"아, 엄마가 육십사 살이구나." 아, 보호자가 나였구나.


2. 벚꽃 대신 핸들

보호자는 잠시 외출할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같이 미용실 놀이도 하고 동네 공원에라도 놀러 갈 텐데...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남편의 전기차를 내가 몰게 되어, 연습이 필요했다.


몇 주 전 월요일. 갑작스러운 교내 메시지로 교무실이 술렁거렸다. "차량 5부제를 실시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차를 가져올 수 없게 되었다. 가끔 미세먼지가 심한 날 명목상 내려오던 공문이었다. 이번에는 에너지 위기관리 차원에서 강력하게 시행한단다. 그래도 수업하려면 차는 타고 오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3. 살아남는 방법들

그러나 일주일 후, 5부제에 대한 불만은 쑥 들어갔다. 새 공문이 왔기 때문이다. "차량 2부제입니다. 차 버리시든가요." 끝에 안 보이는 한 줄이 더 있는 듯했다. 그래도 5부제는 할만했다. 2부제라니! 일도 홀짝으로 시켜라! 멀리 사는 선생님들은 도대체 출퇴근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난리가 났다. 제외 대상은 미취학 아동 동반 차량. 심지어 경차, 하이브리드차도 실시 대상이었다. 누군가는 근처 주차장에 댄다, 전기차 렌트를 알아본다 소동이 일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 저는 남편 차가 전기차라서요. 바꿔 타려고요." 교무실에 거센 비난이 일었다.

"선생님! 그런 야비한 수를 쓰시는 건가요?"

"아이고... 일단 저라도 살고 봐야지요."


4. 부앙! 의 세계

호기롭게 말했으나, 처음 모는 전기차는 너무 무서웠다. 우선 내 차보다 크고, 엑셀과 브레이크감이 달랐다. 휘발유차는 부드럽게 나가는데, 전기차는 부앙! 하고 튀어나갔다. 원리를 아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무섭다는 게 문제였다.

회생제동 기능을 끄고 기타 등등 설정을 모두 기존 차와 비슷하게 바꿨지만 떨리는 건 여전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교내에서 자체 징벌(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교장실에 불려 가나?)까지 하겠다는데 방법이 없었다.


5. 절반의 주차장

드디어 2부제 시행 첫날. 전기차를 몰고 출근했다. 주차장 모습은 경이로웠다. 항상 자리가 부족해서 이중, 삼중 주차를 했는데 정확히 반 이상이 질서 정연하게 비어있었다. 비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눈에 띄는 날도 드물었다. 여유롭게 주차를 하고, 차 문도 활짝 열고 내렸다. 한적함 속에 묘한 씁쓸함이 일었다. 교사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시키는 대로 방법부터 찾았다.


"공노비가 그렇죠, 뭐." 내비게이션 지도를 찾는 입맛이 썼다.


6. 전쟁은 이렇게 온다

쓰레기봉투부터 화장지, 그리고 자동차까지.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밖에서 들여와 쓴다. 결국 전쟁은 이렇게 사소한 제약의 얼굴을 하고 일상으로 스며든다. 총성이 아니라, 금지와 불편의 형태로. 원하는 때에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목적지에 닿지 못하게 하면서. 저 멀리에서 터진 포탄 하나가, 벚꽃이 만발한 이곳의 하루까지 흔들어 놓는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그래도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 정부도 대응책을 내놓겠지만, 하루를 버텨내는 건 결국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7. 꽃이 닿지 않는 쪽

"어떤 스타일로 해드릴까요?"
"보호자 스타일로요."

그게 어떤 스타일인지 앞으로도 지켜보려면, 아마도 육십사 살까지 오래도록 건강하게 아이들 곁에 있어야겠지. 벚꽃을 배경으로 우리 집 거실은 아직 그럭저럭 평화롭다. 그럭저럭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와닿는 오후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는 봄날의 미용실 놀이를 즐길 권리가 있고, 이 시기는 전기차처럼 부앙! 하고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만큼 짧고 소중하다.


멀리서 전쟁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이 오후를 한 번쯤 잃어본 적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