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의 침범
"어머니, 이제 괜찮으세요?"
이석증으로 건널목에서 길을 건널 때 도로가 도는지 내가 도는지 세상이 빙빙 돌아 응급실을 찾았을 때 항암치료 때 낯이 익은 수련의가 다가오며 물었다.
"어머니 돌아가신 지 오래됐는데........"
무심결에 대답을 했지만 나도 수련의도 서로 무언가 어긋난 답에 당황했다.
요즘은 타인이 나를 부르는 어지러운 호칭이 나의 정체성을 헷갈리게 한다.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며 몸의 변화만큼 뼈아픈 것이 호칭의 변화였다. 꼬마에서 학생, 그리고 아가씨를 거쳐 지금 타인이 나를 부르는 아주머니나 아줌마는 - 사실 아줌마라는 이 호칭은 왠지 중년 여성들을 싸잡아 낮추는 거라 왠지 설레발친다는 억센 이미지 때문인지 영 달갑지는 않지만 - 나이에 따른 변화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병원에서 어머니라 불리는 것은 도통 적응이 안 된다. 심지어 억울하기까지 하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해 설움을 격었다면 나는 어머니가 아닌데 어머니라 불려 서러웠다.
"진짜 어머니인 나도 딴 사람이 어머니라 부르는 건 노인 취급하는 거 같아 싫다."
장성한 자녀를 둔 친구도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분명 이런 호칭이 독신이든 결혼을 했든 중년에게는 달갑지 않은 게 분명하다.
내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니라) 시절에는 일 년에 두어 번 의무적으로 위문편지를 써야 했는데, 그때 대개 ‘최전방에서 고생하시는 국군 아저씨께’라고 시작하여 '아저씨'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사용했었다. 생각하면 이십 대 초반의 파릇파릇한 젊은이들이 참 언짢았을 것이다. 사십이 넘어서도 아저씨라 불리면 질색을 하던 남자 동창들이 있었는데 내 경우 듣고서 기겁을 했던 호칭이 '어머니' 외에도 길거리에서 아파트 분양 전단지를 나눠주던 사람들이’ 사모님‘, ’ 여사님‘ 이라며 불러 세웠을 때였다. 나름 고심하며 예의를 차린 듯하기도 하고 내가 내 집 마련에 관심을 가질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경각심이 들기도 했다. 평생 들어볼 일 없을 것 같은 사모님 소리에 처음엔 당황했고 다음엔 피식 웃음이 났었다.
직업적으로도 보따리 장사 같은 시간강사로서 불리는 호칭도 참으로 다양하다. 호칭어가 발달한 한국어 특징과 모순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예가 시간강사 호칭 일 듯하다. 외래교수라 지칭하는 학교들도 있지만 사실 나도 학생들에게 '교수님' 소리를 들으면 교수라는 직위가 아니라서 뜨끔하고 '선생님'으로 불릴 때가 편하다. 그러나 간혹 '강사님'이라 부르는 학생을 보면 강사 맞는데 기분 언짢아진다. 자격지심일 수도 있지만, 임용되지 못했을 뿐 자격을 갖추었다 생각하는데 학생들이 내 지식에 믿음보다는 의심스러운 뜨내기로 취급하는 것 같아 가슴 먹먹하다. '아무개 씨'라고 안 부르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하나. 반대로 내가 30대 초반에 강의를 할 때 학기 초반엔 학생들 이름도 외울 겸 출석을 꼬박꼬박 불렀는데 고령자 전형으로 입학한 50대 한분이 "거 나이도 있는데 씨자 좀 붙여 불러줌 안 되겠습니까?"라고 해 당황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덕에 이름과 얼굴을 모두 기억했으니 그다음부터는 출석을 부르지 않는 것으로 불만을 해결했었다.
호칭 외에도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도 발달한 국어인데 요즘은 노총각, 노처녀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결혼이 늦어지는 시대라 그런 것도 있지만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기대 수명이 늘어나니 기준도 명확하지 않거니와 정상적 삶의 길을 가지 못한 사람이라는 비아냥거림처럼 보일 수 있으니 잘 안 쓰게 된듯하다. 남녀노소 구분 짓고 결혼 유무로 사람을 판가름하려는 시도가 사라진 것 같고 무엇보다 내가 노처녀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어 반갑다. 그러면서도 한편 개운치 못한 면도 있다. 너무 나이가 들어 결혼할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생각해 아예 노처녀라는 말조차 꺼내는 사람이 없어 내가 혼자 세상이 변했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수술 후 첫 진료시죠?”
진료실 앞에서 간호사가 또 나를 어머니라 불렀다. 난 누구의 어머니도 아닌데……. ‘어머니’라 불리는 것은 결코 친숙해지지 않는다. 왜 이름으로 부르질 않지? 이름이 생각 안 난다면 차라리 ‘저기요’라던가, ‘환자분’이라 칭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짧은 시간 머릿속에는 수많은 호칭이 떠올랐지만 가장 원하는 것은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자식을 낳거나 길러 본 적도 없는 데. 내게 ‘어머니’는 희생과 인고의 세월을 품은 호칭인데, 임신과 출산과 육아 고통이나 보람 같은 어머니란 단어가 풍기는 무게를 져 본 적이 없는 내가 '어머니'라 불리 것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서글프다. 정신과 신체의 부조화, 어머니라 불리는 나의 모습에는 이미 젊음은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다가오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