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파티(Amor Fati)

니체와 명랑한 보호자

by 창골 샌님

통을 단순히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필연성으로 받아들이고 삶을 사랑하라.


사람은 대지의 삶이 무겁다고 말한다


중력의 정신(악령)이 바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고등학교 시절 순전히 제목이 멋져 보여 읽고 싶었던 책이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지적 허영심’에서 책을 생일 선물로 받았지만 그 철학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나는 책장 메꾸기용으로 이용했다. 고등학생이던 내게 남은 구절은 니체가 반복해서 사용하던 “인간은 초극되어야 할 존재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한 구절뿐이었다. 그리고 그 책을 다시 꺼내 든 건 김연자가 부른 <아모르파티>란 노래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내세워 '삶의 고통을 긍정하라. 몰락한 인간은 초극된다'라고 말했다. ‘아모르파티, 인생을 사랑하라’란 말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항암 6회 차가 넘어가며 일주일에 한 번씩 1박 2일로 입원하는 것이 짜증이 났다. 여러 암환자들과 함께 병실을 사용하는 것도 어떨 땐 참 고역이었다. 가벼운 인사말 정도로 끝내고 싶은데 몇 번 만나 친숙해졌다고 호구 조사하듯 캐묻는 것도 싫지만 그것에 피곤한 척 반응을 안 하는 것도 과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주사 약은 길어야 다섯 시간이면 끝나는데 신음 소리, 코 고는 소리, 구토하는 소리를 들으며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내 경우 주사를 맞으면 빈뇨로 화장실을 자주 왔다 갔다 하는 데 그것도 눈치 보이고 등등의 이유로 7차 항암부터 낮병동에 입원했다. 의사들의 일정에 따라 퇴원 시간이 달라지지만 아침에 가서 저녁에 늦더라도 돌아와 집에서 자는 편이 훨씬 좋았다. 낮병동은 사람이 많지 않아 늘 창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대개 조용했다. 어떤 사람은 낮병동이 병원비가 덜 들어가지 않느냐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의사들이 바빠 퇴원 수속을 늦게 밟게 되면 퇴원도 늦고 병원비도 뛴다. 물론 엄청난 액수는 아니지만. 최대 단점은 남녀 구분이 없고 보호자도 함께 있기 때문에 좀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에 있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은 모든 단점을 상쇄했다.

낮병동에서 간혹 마주치는 70대 부부가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간암 항암을 받는데 남편이 항암을 받는 동안 지나치게 명량한 할머니는 무료하다고 티브나 라디오 혹은 유튜브를 볼륨 확 올려 듣곤 했다. 나도 암 환자인데 배려가 없는 행동이라고 삐죽거리며 항의를 할까 고민도 여러번 했다. 물론 내가 항의하기도 전 간호사가 한소리하고 나가면 잠시 조용해지며 할머니는 기분이 상한 듯 외출을 하고 돌아온다. 그렇게 병원 앞 제과점에서 빵을 사 가지고 돌아온 할머니가 먹어보라며 가져와서 내게 물었다.

"내가 너무 따분하고 이어폰은 귀가 웅웅 거려 몸이 배배 틀려서 그러는데 그냥 음악 좀 들으면 안 될까?"

어르신의 청을 쌀쌀하게 거절할 수도 없고 음악이야 나에게도 괜찮지 싶었다. 그런데 아뿔싸 내 생각이 짧았다. 트로트 메들리가 우렁차게 할머니 휴대폰에서 울려 퍼졌다. 결국 할아버지 주사가 빨리 다 들어가 퇴원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김연자가 부른 <아모르파티>가 흘러나오자 할머니가 환호를 했다. 계속 반복해서 그 노래가 병실에 퍼졌다.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할머니가 구성진 목소리로 ‘아모르파티’를 따라 부르며 흥겨운 가락에 몸을 들썩였다. 흥겨워하는 할머니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암 병동에 퍼지는 노래는 확실히 활력을 주고 있었다. 나 역시 누워 듣다 보니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와 무릎을 탁 치게 했다. 난해한 니체 철학이 가볍게 그러나 생활 밀착 철학으로 와닿았다. 죽음의 그림자 때문인지 오늘, 이 순간을 잡아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현재가 중요해지고 스트레스와 고된 일에 방치했던 내 몸을 다독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을 잡아라. 아모르파티. 걱정이 앞서던 내 삶의 패턴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김연자의 노래는 춤을 추게 한다. 이성적인 척 무게를 잡고선 춤을 출 수 없다. "운명을 사랑하면 비로소 춤을 출 줄 안다"라고 차라투스트라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춤을 출 줄 아는 신만을 믿는다. 나는 악마를 보았을 때 악마가 엄숙하고 철저하고 심오하며 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중압의 정신이었다.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몰락한다.... 나는 날아다니는 것을 배웠다. 그때부터 나는 움직이기 위해 땅을 차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나는 가볍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날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나를 내려다본다. 지금이야말로 어떤 신이 나를 통해서 춤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가 말하길, 악마는 엄숙하고 철저하고 심오하며 강한 중압의 정신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몰락한다고 경고한다. 할머니의 트로트 감상에 동참하다 보니 잊어버린지 오래된 니체가 새삼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부여잡고 놓치기 싫어하던 것들, 남들과 달리 결혼도 안 한 나 자신의 의무라 여겼던 일과 성공에 대한 압박감은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머리카락 빠져나가듯 빠져나갔다. 몰락한 인간이 거듭나기 위한 방법은 중압을 내려놓고 가벼운 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뛰고 날아올라 세상을 초극해 자유를 얻을 것이다. 가벼워진 몸만이 자유로운 춤을 출수 있다. 나를 표현하고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아모르파티! 김연자의 노래를 틀어놓고 한바탕 춤을 추어야겠다. 고통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 찾은 답은 인생의 무게를 덜어내고 조금 가볍게 몸짓을 하자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다. 아모르 피티! 삶을 사랑하라. 나도 따라 중얼거린다. 아모르파티...



인용문헌

니체, 프레드리이히, 김정진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 올재, 2012. p, 51


https://brunch.co.kr/publish/book/6023


창골 샌님창작 분야 크리에이터번역가 출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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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이의 무녀저자산문집 『쿠마이의 무녀』를 출간 했습니다. 50대 비혼. 암과 싸우며 충전중입니다. 아직도 낭만적 서사 주인공을 꿈꾸며 속없이 사는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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