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해로운 우정?
"야, 넌 저기 못 올라가겠다. 너한테는 저기로 돌아서 걸어가는 길이 딱이다."
몇 년 전 하늘 공원에 놀러 갔을 때, 가파른 계단길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친구가 좀 얄미웠다. '내가 올라 갈지 못 올라 갈지 왜 네가 판단해'라는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내 자격지심이었겠지만, 장애가 있다고 가파른 계단 오르는 걸 못할 거라고 규정하는 것은 배려가 아닌 상처였다. 만일 '우리 저기 올라가기 힘들 거 같다. 다른 길로 가자'라고 했으면 좀 기분이 나았을까? 나를 너무 잘 아는 친구라서 나름 생각해서 말한 것도 알지만 '너는 그래'라고 나를 규정하는 어투에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친구에게 나는 "저길로 가는 게 바로 하늘공원에 닿는다며. 나 한번 시도해볼래"라고 말해버렸다. 사실 가파른 계단이 오르기 쉽진 않아 괜한 오기를 부렸다고 곧 후회했지만...
다음번 만남에서는 저녁 메뉴를 고르는 일에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우리 뭐 먹을까? 난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네가 정해"
"족발!"
"나 돼지고기 안 먹는 거 알면서....."
"넌 뭐 그렇게 안 먹는 게 많아? 그러니까 메뉴는 네가 골라. 난 지금 족발을 너무 먹고 싶은데 네가 안 먹잖아."
이런 대화가 배려 인척 비난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다. 벌써 사십 년 가까이 잘 지낸 친구인데 이삼 년 전부터 이 친구를 만나고 나면 불쾌한 감정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돼지고기 안 먹는 건 이미 어린 시절 친구가 됐을 때도 그랬는데 새삼스럽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서로 감정적으로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생각이 깔려있었던 듯하다. 항상 자신이 양보하고 배려해서 손해 보는 입장이라고 생각한 걸까? 사고가 나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암에 걸려서 유난히 풍파가 많은 인생을 사는 나를 열심히 챙겨준 친구지만 이제 자신도 형제나 부모님과의 갈등, 오랜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자신의 애매하고 불안한 처지에 누구를 보듬을 정신적 여력이 없으니 성격이 까칠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친구의 태도가 이후에도 계속 내게 긍정적이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도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았다.
"내 대학동창은 주사 바늘을 더 이상 꽂을 데가 없어서 발에다 놓더라. 너는 주사 삽입하니까 편하지?"
"네가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 난 처음 입원했을 때부터 혈관 없어서 발에다 놓는 거 너도 봤잖아. 케모포트도 수술로 삽입한 건데 편하겠니? 어쨌거나 혈관 찾느라 여기저기 찔러 대지 않는 건 좋지만 이거도 주사 꼽을 때 꽤 아파"라고 다다다 긴말을 하고 나자 괜한 어깃장을 놓고 있구나 싶어 후회가 됐다. 동네 장바닥에서 내가 더 힘들게 살았다고 싸우듯 기싸움이 반복되었다. 친구를 만나 사소한 이런 일로 말씨름을 하니 가뜩이나 몸도 딸리는데 함께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스트레스고 피곤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항암 끝내고 림프부종이 오락가락하며 몸이 부으니까 내가 먹어서 살이 찐 건지 림프부종 여파인지 헤갈려."
"난 네가 날씬하게 마른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운동부족이겠지 너 요즘 몸 안 움직이잖아. 딱 너 같은 애는 치매 걸리기 십상이야."
"너는 말을 왜 그 따위로 하니!"
"나원참 걱정돼서 하는 말을 갖고..... "
"걱정이 아니라 염장을 지르는 거 같은데...."
"허 참. 나..."
이렇게 유치한 신경전을 반복하다 어느샌가 서로 연락을 안 한다. 긴 세월 서로 집안 내력까지 잘 알고, 나에게 콩 한쪽도 나눠먹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잘해 준 친구지만, 서운하고 만남이 기대 되질 않는다. 아마 이해해 주자고 마음을 다잡고 만나도 또 신경전을 반복하고 만남이 지루하고 피곤할 것 같아 연락을 안 할 것 같다. 피차 그 친구도 마찬가지겠지만... 물론 이 친구도 내가 무슨 일 당했다고 하면 반대로 나도 그 친구에게 일이 생기면 여전히 달려 나갈 사이임에도 틀림없지만. 이제 수다 떨고 스트레스 풀자고 만나자고 할 것 같지는 않다. 서로 생활 반경이 달라지다 보니 공감대의 교집합이 적어지고 서로 다른 사회생활로 길러진 기질이 어린 시절의 학교라는 한정 공간에서 서로를 이해할 때와 다르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공감 형성이 어렵고 편한 사이라는 타성으로 서로 생각을 존중하지 않을 때 우정은 파탄 나기 시작한다. 배려는 하되 존중하지 않는다는 건 '쟤가 돈 좀 벌었다고 나를 하찮게 여기는구나'라는 식으로 동등한 친구관계가 무너지는 지름길이다.
오랜 세월 알고 지냈다 하더라도 내 상황이 변화무쌍하게 변했듯 친구의 인생사도 마찬가지 일터, 그 사이 사고체계가 달라져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다르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한때 몇몇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유난히 시어머니 욕하고 자식 걱정만 하다, 너는 혼자 사니 얼마나 좋으냐며 홀로 세상 고생 다하는 것처럼 말하다 들어가는 친구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기혼이나 비혼의 문제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듯하다. 사실 기혼 친구들의 자식 걱정도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듣는 것이니 재밌는 일이기도 하다. 내 경우 자식을 길러본 경험이 없으니 내 어린 시절 나와 부모와의 경험을 반추하기도 하고, 내가 그 입장이라면, 입장 바꿔서 조금만 생각하면 서로 공감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공감대 형성이 어렵고 만남이 피곤해지는 이유는 대화가 교류되지 못하고 일방적이거나 자존감이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생각이 같지 않더라도 상대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가 친구사이에도 필요한데, 나이가 드니 서로 살아온 연륜 때문에 고집을 꺽지 않으니 불화가 생기는 듯하다.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내 의도도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언젠가 sns 문자로 대화하다 보니 나는 좋은 뜻으로 한 얘긴데 내가 비꼰다고 생각한 친구가 내게 항의를 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칭찬을 한 거라는 걸 안 친구는 바로 사과를 했는데 나는 계속 어떻게 나를 그런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냐며 사설을 늘어놓았다. "넌 어떻게 네 생각만 옳다고 하니?"라고 반문하는 친구의 말에 뜨끔해서 다시 생각해보니 나 역시 바로 대놓고 칭찬하면 될걸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결국 안 했다'라고 한 내 말이 칭찬이 아닌 비난으로 들렬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고 우리의 유치한 언쟁은 "우리가 국민학교 동창이다 보니 계속 그 수준으로 노나보다"라고 웃으며 마무리했다.
어린 시절에도 친구끼리 경쟁심리는 존재했다. 그러나 뭔가 내가 우수하면 우쭐해하기도 하고 내가 아쉬워 운 점이 있으면 부탁을 하는 친구라는 관계의 기본 속성은 서로가 서로를 동등하다 인정하는 것이라 본다. 즉, 서로를 독립 객체로 인정하고 수용하기 때문에 좋은 관계로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리라.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지속하고, 역으로 내가 하위라고 대접받는다고 느끼면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 친구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고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는 말을 쉽게 하는 것도 상대 친구를 학교 선생이 문제학생 다그치듯 하는 충고 아닌 꾸짖음으로 느껴져 절교의 씨가 된다. 친구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인정할 수 없지만 그 친구를 소중히 여긴다면 좀 더 길고 진지하게 입장 바꿔 대화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뜸 자신은 너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 힘든 친구를 더 궁지로 모는 것일 수 있다.
"너는 유학까지 다녀온 애가 왜 그러고 사니?"
꽤 오래전 한 친구가 내게 한말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는 정말 할 말이 없어 아무 말도 안 했었다. 돈도 없는 내가 유학 결심을 하고 모든 사람의 우려 속에서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더 그 친구의 말이 마음을 후벼 팠다. 그야말로 나도 이러고 살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노라 구차하게 변명이라도 늘어놓아야 했을까. 오해라면 설명해서 풀 수 있지만, 내 인생을 설명이나 이해를 구해야 하는 사이가 되면 친구의 범주가 이니라고 생각했다. 나를 설명하며 이해시키면서 유지하는 게 친구는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은 인간관계 최대의 적은 돈 문제라고 말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돈 때문에 끝장날 사이라면 원래도 조만간 끝장날 사이였다. 돈 부탁은 하기도 어렵고 듣는 입장도 괴롭기에 , 고심 끝에 특히 허물없는 절친한테만 말하지만 부탁이 반복되면 가까운 사이라도 부담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개 절친한 친구라면 거절하면서도 상대 친구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활은 어떻게 유지되는지 물으며 해결 방법을 함께 고심해주기도 한다. 그럴 때 여전히 친구가 나를 걱정하고 관심을 갖는 거 같아 한결 힘이 된다. 돈거래는 의도와 달리 약속을 어기면 서로 바로 손해가 드러나니 대표적 신뢰의 문제로 거론되는 것 맞다. 어려운 와중에 친구여서 도와줬는데 어긋나면 그처럼 난감할 때가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관계가 유지된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신뢰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신뢰는 돈 문제뿐 아니라 시간 약속도 마찬가지로 관심의 정도를 나타내는 우정의 질과도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주로 인사치레 잘하는 사람에게서 받게 되는 백화점 자동 인사 인형 같은 진심 없는 말은 내가 상대에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깍두기"라는 존재라는 사실 확인이기에 결코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어차피 나도 같은 생각이니, "나중에 언제 한번 보자"라고 말하면 "죽기 전에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정도로 받아치면 그뿐이다. 하지만 "이번 주말", "퇴원하는 날 병원에 갈게", "다음 주 토요일에 물건 받으러 갈게"등 날과 행위가 특정되면 그 만남을 생각해 다른 스케줄을 조종하는데 "정확한 시간도 말 안 했는데 그게 무슨 약속이야?"라고 정작 본인은 전혀 만날 생각이 없었노라 공포를 하면 허탈하고 놀림받은 기분이 든다. 한술 더 떠 진짜 장소 시간 날짜까지 잡고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약속을 바꾸려 하는 일이 반복되면 뒤통수라도 한번 후려치고 싶게 짜증이 난다. 본인의 시간이 귀하면 다른 사람의 시간도 중요한데 거기까지는 생각하지도 아니 생각하기도 싫어하는 이기주의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내 엉클어진 스케줄을 헛되게 만든 것을 넘어 사람에 대한 존중이나 예의가 없는 대접을 받는 거 같아 허탈하고 화가 난다. 진심이나 행위는 빠지고 말로만 해주는 걱정은 정말 안 하느니만도 못하다. 어차피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인 별 볼 일 없는 사이라는 증거로 계속 공수표 약속을 날리는 것일 텐데,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집에 지쳐 누웠을 때 그러면 '이건 사람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 아픈 사람한테 뭐 하는 거야'란 생각이 들어 가뜩이나 아픈데 울화병까지 생긴다. 내가 이런저런 병으로 고생하니 인정상 연락 안 하기는 찝찝하니 말로 때우려는 의도였으면 차라리 "몸조리 잘해라"에서 끝냈어야 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고 친구의 말 한마디에서 내게 진심인 친구와 아닌 사람이 드러난다. 전에 유명하지 않지만 문학상을 탄 적이 있는데 한 친구가 "네가 내 친구란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친구의 말은 문학상 상패보다 더 내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것 같아 뿌듯했다. 반면 "그래도 네가 그런 거라도 받으니 다행이다"라고 한 친구도 있었는데 역시 '그게 너 수준이야'라고 얕본다는 생각 들어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물론 전자는 여전히 연락 잘되는 친구고 후자와는 딱히 연락을 하지 않는다.
자연인들처럼 정말 자발적 고립을 선택을 하지 않은 이상 가족이 없는 사람에게 친구란 매우 값진 존재이다. 여태 살아오며 친구들로부터 많은 도움과 위로를 내가 준 것보다 더 많이 받았다. 사실 일정 부분은 내가 장애를 딛고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이 세상이 좋다고 느끼는 건 친구들 때문이다. 더욱이 친구는 사회적 필요에 의해가 아니라, 정신적 유대로 맺어져 서로의 존재로 인해 내 정체성을 찾아가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가족처럼 혈연관계라는 끈이 있는 사이도 아니지만 친구는, 열정에 빠진 연인 사이와 달리, 서로 구속하려 들지 않는다. 물론 시기 질투가 있을 수 있지만 친구관계는 오히려 자극이 되고 경쟁 심리가 내 발전에 도움되기도 한다. 친구끼리 서로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한다는 것은 존재의 인정과 상호 신뢰, 동시에 존중하고 받아야 할 사이 임을 말하는 것이리라. 내 은사님이 "혼자서 잘 사는 사람이 둘이서도 잘 사는 법"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친구사이에도 통용되는 거 같다.
"성공은 친구를 만들고 역경은 친구를 시험한다"라는 말이 있지만 친구가 필요와 공급의 경제 논리화돼버려 이 보다 "친구와 기쁨을 나누니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니 반이 되었다"라는 말이 내게 더 와닿는 말이다. 짜증 유발자들이 아닌 함께 소통할 친구가 있으니 마음이 풍족하고 즐겁다. 한편으로는 세상 불만 가득한 내가 컴퓨터만 들여다보니 정신이 딱 모니터만큼만 작동해서 누구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반성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