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던 세상이 왔건만

위드 코로나 위드아웃 허영

by 창골 샌님

물귀신처럼 혼자는 망하지 않고 같이 망하는 상상을 했다. 전쟁이든 자연재해든 피해자는 빈민들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단순하게 죽든 살든 삶의 지난함에 핑계가 생긴다는 사실은 그럴듯한 내 인생사의 변명이 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핑계는 자기 방어의 위장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위기를 기회로. 막연히 나도 부와 명예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수 있게 세상이 뒤집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나의 바람이 정말로 실현되었다.

정말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뒤집어졌다. 꿈이 이런 식으로 실현되리란 생각은 머릿속에서 일어난 적이 없다. 전쟁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자연재해보다 더 참혹하게 전 세계가 당했다. 소설과 영화 속에서 보며 진저리 치던 바이러스의 창궐. 2020년 1월 22일, 당분간 병원 갈이 없다고 홀가분하게 뉴스를 보던 나는 우한 시가 봉쇄됐다는 소식에 "어머 세상에 이런 일이"라며 탄식했다. 카뮈의 『페스트』 속 오랑시가 현실로 나타나다니. 최첨단 기술의 시대를 거스르며 창궐한 바이러스는 봉쇄를 뚫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우리나라도 1번 환자가 발생하고 한 달이 채 되기도 전, 31번에 확진자에 이르자 급격하게 전염병 감염 확진수가 올라갔고 세계에서 요주의 국가로 찍히는가 싶더니 똥 묻는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 꼴로 다른 나라의 상황은 더 열악했다. 우한을 보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던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봉쇄되고 이동제한령이 발동됐다. 현존 인류가 생전 처음 보는 국면이 창출되고 펜데믹이 선언되었다. 바이러스는 코비드 19(COVID 19)라 이름이 붙여졌다. 왕관 같은 화려한 돌기를 가진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죽음의 그림자로 뒤덮었다. 사람간 접촉으로 감염이 일어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당국의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와 외출 자제 권고가 내려지고 거리가 텅 비었다. 다른 나라들처럼 도시 봉쇄가 일어나지도 않았고 생필품 품귀 현상도 빚어지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발생하는 확진자에 개인과 당국은 긴장을 풀지 못했다. 사람들의 관심, 생활, 일터 모든 곳을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배했다. 방역당국에서는 외출 자제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호소하면서 인간의 모든 활동을 멈추어야 모두가 살길이라 외쳤다. 걱정과 불안으로 세상이 뒤숭숭하고 인간 활동이 멈춘 고요 속에 세상천지가 개벽을 한 듯 온통 낯설어졌다.


늘 그렇듯 방구석에 처박혀 노트북으로 세상을 기웃거렸다. 아무 곳도 갈 곳이 없는 사람,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사람, 가족이 없는 혼자 사는 사람, 아무도 만나지 않는 사람. 나는 뜻하지 않게 이 상황에서 가장 사회가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해이 지지 않기.' 온라인 커뮤니티에 '하지 말란 짓은 좀 하지 말자'라고 하는 글에 공감을 누르고 나의 의견을 피력했다. 독거, 약자, 소외 계층이란 모든 수식어를 붙들고 삶이 죽을 맛이었는데 사회참여의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게다가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고 마스크 구매 오부제의 시행은 내게 다른 생각을 품게 했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할 경우의 불안감보다는 마스크 구매 행렬에 동참을 하는 것, 얼떨결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 캠페인에 보다 능동적인 참여를 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다.


은둔 형 외톨이니, 소외된 인생이니, 세상에서 도태되었느니 하는 이러쿵저러쿵 비평이 더 이상 내게 유효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당연했던 일상과의 거리두기가 장려되니 세상이 균질해진 느낌이었다. 돈이 있어도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갈 수 없고, 값비싼 치장과 화장을 해봐야 마스크에 가려지고 거치적거릴 뿐이고, 비싼 식당이던 노점이던 외식이 똑같이 꺼려지는 세상이다. 좁아진 인간관계를 서글퍼할 필요도 없다. 격리,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외출 자제. 비대면 사회적 행위 장려, 이런 감염 차단을 위한 사회적 요구를 나는 그 누구보다 잘 지켜낼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다, 어차피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용을 쓰며 일자리를 찾고 일을 해도 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또 잘렸을지도 모르고, 아직 암 완치 판정도 못 받은 바이러스 취약 층인데 힘들게 암도 이겨냈는데 바이러스에 무너지면 너무 억울하잖아. 사회에서는 재택근무가 장려되고 확진자와 접촉을 했다면 자가 격리 대상자가 되었다.

어차피 다들 삶이 지체되네. 백수건달이라고 나 스스로를 지칭하며 인생에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될 적절한 핑계가 생겼다. 심지어 방구석에 아픈 몸으로 처박혀 있다는 궁상스러움이 현 사회가 가장 원하는 사람들의 귀감이라는 자신감까지 생겼다. 세상이 거리두기를 실행해 사람들 사이가 멀어지자 시야가 더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라고 미래 학자들이 전면에 나서 떠들어댔다. 지난 십여 년간 느껴보지 못했던 이젠 좀 살만하다는 느낌에 신바람이 났다. 드디어 내가 사회적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탈 접촉, 비대면의 시대. 돌이켜보니 지난 시절의 하루를 버티기 위해 잔머리 쓰던 방법이 이제 사회에서 장려가 되고 있다. 인생에 헛된 것은 없구나. 비대면 서비스를 잘 활용하여 암 치료가 시작된 이후에 온라인 쇼핑은 나의 필요를 채우고 소소한 욕구를 풀 낙이 되고 위안이 되었다. 조금만 힘을 써도 금세 부어오르는 림프부종 때문에 물건을 들고 다닐 수 없고, 머리가 홀라당 다 빠져 사람들과 접촉을 극도로 꺼리던 때 모든 생필품을 조용히 문 앞에 두고 가는 비대면 새벽 배송은 실로 요긴한 서비스였다. 게다가 이월 상품이 칠팔십 퍼센트씩 세일을 하면 건강하게 외출할 미래를 위해 물건을 장만해 두는 재미도 쏠쏠했다.

자가 격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혹은 아예 지킬 생각 없는 사람들의 일탈을 뉴스를 접하며 혀를 찼다. 나는 세상에 칩거 생활의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내 경우 진작부터 시간과 돈의 여유가 없어서, 마비가 있는 불편한 몸 때문에, 더구나 항암 치료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외출을 못하고 집안에서만 생활할 수밖에 없으니 여행은 꿈도 못 꿨다. 집이 가장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전 국민이 가본 듯한 에버랜드나 제주도 등등 못 가본 곳이 많은, 나는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여행사 사이트를 뒤지며 혼자 여행할만한 장소를 찾아 예산을 짜고 꼭 가봐야 한다는 명소들의 사진을 보며 머릿속에서 길고 다양한 동선을 만들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장소 검색에 시간과 공을 투자하고 나면 이미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지치고 피곤했다. 이런 칩거의 노하우를 아는 전염병의 시대에 가장 신뢰할 사람은 나같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보다 모범적 자세를 취하고 행동하자는 결심을 했다.


내가 자주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진자와 접촉으로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는 글이 자주 올라왔다. 그리고 확진되어 고생한 후기도 올라왔다. 그런데 한 사람이 동선에 대한 고민을 올렸다. 자주 가던 카페에서 확진자가 여럿 나와 검사받으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동선이 공개되면 자신의 비밀이 드러날까 고민이라는 글이었다. 전염병의 시대에 모두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은 감염 병 확진자의 동선이었다. 여기저기 퍼지는 동선만큼 비난도 쏟아지지만 집에만 있던 사람이 한번 외출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사람들은 일단 안도하겠지만, 한번 외출로 걸린 운이 따라주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 갈 곳 없는 처지가 한심해 보이지 않을까. 갑작스레 타인의 시선이 신경쓰였다. 동선을 좀 만들고 다녀야 하나. 삶이 나이를 잊고 정체되어 칩거 생활에 익숙하면서도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이 그럴싸해 보이길 바라는 허영이 남아 있었다.


생활에 쫓기던 지난 시절의 동선은 내일에 대한 기다림에 이곳 저곳 다니며 전국적으로 막연히 늘어졌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의 동선은 침대, 부엌, 책상 화장실, 택배를 받기 위한 현관, 단조로운 동선이다. 문밖에 바이러스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의 일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결국 삶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던 흘러가는데 다시 어떤 흐름에도 합류하지 못하고 고립된 칩거 생활로 복귀했다. 코비드 19란 바이러스는 2020년을 거쳐 2021이 되어도 여전히 아니 더 크게 위력을 떨치고 있다. 그러나 백신 접종을 받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접속하는 나의 모습은 좀 더 왜소해지고 피부가 더 거칠어졌다. 다시 여전처럼 고민은 끝없이 생성된다. 이제 사회 참여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 노안이 심해지는지 세상의 흐름이 흐릿해 또렷이 보이지 않는다. 집 밖에 설자리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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