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동력
삶은 열정 속에 유지되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내게 삶의 열정이란 무엇이던가? "행복을 등진 정열"이라는 소설가 김유정의 산문 제목이 주는 강렬함 때문에 행복과 정열의 상관관계를 고심했다. 행복과 정열 모두 인생에 긍정적인 원천이 될 것 같으나 행복은 이미 도래한 그 무엇이고 정열은 바라고 희망하는 것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행복의 본질은 믿음에 있으리라. 속으면서 그대로 믿는, 이것이 어쩌면 행복의 하날 지도 모른다. 사실인즉 나는 그 행복과 인연을 끊은 지 이미 오래다. 지금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은 결코 그것 때문이 아니다. 말하자면 행복과 등진 열정에 뻗쳐 난 생활이라 하는 게 옳을는지. 그러나 가을아 어서 오너라. 이번에 가을이 오면 그는 나를 찾아주려니, 그는 반드시 나를 찾아주려니, 되지 않을 걸 이렇게 혼자 자꾸만 우기며 나는 철이 바뀌기만을 까맣게 기다린다.
- -김유정 [행복을 등진 정열 , 1936. 10. <여성>에 발표한 글 중 발췌
"속으면서도 그대로 믿는" 것이 행복이라면 김유정의 이제 다가올 기대도 희망도 이제 그만 믿겠다는 결의는 행복을 등져버리는 대신 열정을 현재에 남겨두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의 행복을 등진 정열이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인생의 절박함을 내포한 듯 보인다. 김유정은 폐결핵으로 육 개월 이상 몸이 버티기 힘들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죽기 전(1937년 사망)까지 이년이라는 짧은 시간 삼십여 편의 작품을 써 내려갔다. 어쩌면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삶의 의지를 절박하게 문학으로 불살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위에 인용한 산문 "행복을 등진 정열"은 그가 폐결핵과 여러 병증으로 죽기 6개월 전 발표되었다. 그래서 김유정에게 기다리는 때를 맞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점점 희미해가는 시기로 그는 행복에 등을 지고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몰입하지 않았나 유추해본다. 어쩌면 「동백꽃」, 「봄봄」 등 김유정의 대표 소설들에서 나타나는 해학적이고 향토적이라 평가되지만 인간의 도덕이나 가치관 없이 사는 산골 촌부들의 동물적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원초적인 색채는 육체의 강인한 생명력 갈구에서 파생한 것은 아닐까.
내게 삶의 열정이 지속될 원동력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이다. 내가 생각하고 이 순간의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기쁨이다. 나는 내가 빠진 세상은 모른다. 내가 있어 세상이 돌아간다고 느낀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을 돌리는 원동력은 나 자신이고 나의 정열은 세상을 돌릴 연료이다. 내가 세상이라는 무대의 주연배우이다. 나를 무력화하면 세상은 사라진다.
사실 나의 열정이란 것은 그럴듯한 성공을 향해 나갈 내 추진력이었다. 그러나 핵심을 인정하기 두려워했다. 내가 너무 속물처럼 보일까 봐 인생의 어떤 어려움도 인간의 존엄성을 얻는 목표 달성을 위해 견디고 제거할 것이란 말로 두리뭉실 핵심을 가렸다. 돈 잘 벌고 좋은 직장을 가지고 사람들의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게 가장 내가 바라는 성공이었음에도 그러지 못하니 그저 내일을 기다린다는 뜬 구름 잡는 소리만 했다.
나의 열정이란 결국 사회적 안정과 인정을 받는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하지만 구체적 삶의 방향도 가늠을 못하고 계획보다는 그럴듯해 보이게 현상황을 벗어날 일에만 열심이다 보니 불평불만이 생기고 항상 핑계를 대었다. '~가이었더라면' 이런 가정법은 다분 과거 지향적이며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를 만들었다.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장애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마치 내 꿈은 이미 이루었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가 사고 안 났을 때도 별 볼 일 없었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언니가 내 정곡을 찔렀다. 핑계 만들기에 급급한 나머지 현실에서 내가 놓친 것은 당연히 현실감각, 정말 독립적으로 살아갈 경제력 확보에 실패했다.
부족하고 볼품없다고 세상의 눈이 두려워 포장만 열심히 하며 세상 눈을 가릴 포장지에만 내 열정을 쏟아부었으니, 나의 행복이 열정에게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내가 보는 세상인데 왜 남의눈을 의식하고 살았는가. 다른 시대에 태어나 좀 더 김유정 보다 오래 산 나는 '행복을 등진 정열'보다는 행복을 찾고 유지하는데 내 정열을 쏟아야겠다.
"그리고 만약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And if not now, when?) (피르케이 아보트 1:14 (탈무드 6권에 해당))" 나의 행복은 지금 내가 이런 생각을 맘껏 표현하는 현재에 있다. 항상 카르페디엠만을 기억하고 뒷 구절은 정말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었다. 현재를 살며 과거를 곱씹고 지나치게 미래에 의존하면서 정작 현재를 잊고 살았다. 어제의 미래가 오늘이었거늘 내일 나는 과거가 된 오늘을 후회하며 다시 다음날만을 기대하거나 비관하거나 하며 반복할 것인가.
"현재를 즐겨라. 미래에 최소한의 기대만 걸면서(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호라티우스 송가(Ode 1-11)"
현재의 나는 이 세상의 중심이다. 비극이건 희극이건 내 세상에서 주인공은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