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잠 못 이루고
그렇게 시들어가며
그렇게 쩍 갈라진 채로 굳어 살았건만
그 작고 덜덜 대는 흰 모습에
눈도 못 마주치고 도망치듯 뒤돌아서는 모습에
아랫입술을 꽉 짓이길 뿐이지
얼굴이 일그러지는데
눈물이 차고
나는 다시 덜덜 대며 이를 악물게 되고
입이 닫히는데
쏘아붙이고 싶은 말들은 차고 넘치는데
입이 붙고
눈밑이 덜덜거리고
한숨이 훅 나오고
무어라도 소용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동안 짓이겨진 세월이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쏘아본다
녀석은 '그럴 줄 알았어'라고 툭 내뱉는다
나도 작아지고 덜덜 대고 희어지고 있잖아
녀석은 되묻는다.
'그게 니 이유야? 말이 안 되는데, 착한 척이야?'
한참을 나를 노려본다.
그럴 수도
이제는 흘려보내줘야 나도 숨 쉴 수 있을 것 같아
차갑게 박제된 것들이 어디 가겠냐마는
그것만 내 평생 뚫어져라 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저들에겐 없고
나에게만 있는 것을
저들에게 따져 물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 참 논리적이네. 너 좋을 대로 하든지.'
녀석은 휙 돌아선다.
놓아줘야지 이젠.
거뭇거뭇한 과거의 박제 위에
미래의 기억을 계속 덧입히면 될 줄 알았어
하지만 검은색 위에 파란색을 아무리 칠해도
내가 원하는 새파란 색은 안 나와.
그저 멍든 것처럼 검푸를 뿐이지.
그러다
결국 다시 검어져
그러면 나는 아예 더 검게 칠 해
차라리 새까맣게.
그러니 이제는 새 종이 위에 시작하자
하얗고 깨끗한 새 종이 위에
투명한 그대로를 켜켜이 쌓아가는 것
나 그런 삶도 한 번만 살아보고 싶어
녀석은 비웃듯 다시 내게 속삭인다.
'그래. 너 마음대로 하든지'
다시 돌아와 내 옆에 찰싹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