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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플레 케이크

폭신폭신하고 달콤해

by 진정헌

프랑스어로 ‘부풀어 오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수플레.

부풀리는 재료 대신 달걀로만 부풀리는 요리인데, 머랭을 사용해서 만들기에 더욱 부드러운 식감을 가지고 있다.

언뜻 보면 쉬워 보이지만 막상 만들려고 하면 쉽지 않은 그런? 느낌이다.

눈이 가득 내렸던 그날의 거리는 온통 하얀 세상으로 변했고, 너를 보기 위해서 나는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내가 더 안전하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야.

도착해서 보니 거리는 하얗게 변했고 눈으로 길에는 사람도 없었다. 날씨가 추운데 꾸역꾸역 호수 공원 가서 산책을 해야겠다는 나를 데리고 갔다.

차갑게 얼어붙은 호수를 거닐다가 귀여운 눈 곰돌이를 보면서 감탄할 때마다 입김이 새어 나온다.

그냥 사람 사는 동네가 다 똑같은 건데 뭐가 그리 재밌는 건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얀 세상을 지나치다 보니 모든 게 다 새로운 세상에서 너랑 나랑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별거 아닌 거에도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너랑의 시간이 행복한 시간으로 남는다는 걸 알고 있었음을.


1월 그리고 12월.

눈이랑 친한 우리의 계절은 겨울이다.

소복이 눈이 내렸던 행궁과 1월의 수원. 눈 내린 땅에 발도장을 꾹꾹 찍어서 꽃 만드는 걸 알려줬던 너.

꽁꽁 얼어붙은 호수와 12월의 평택. 걷다가 미끄러져서 무릎을 찧으니까 한발 먼저 걸으며 발자국 길을 만들어준 너.

의식의 흐름처럼 폭신폭신한 눈을 밟다가 문득 시작된 대화


“진짜 폭신하다. 눈은 늘 새롭네요.”

“눈 처음 보죠?”

“작년에도 서울에 있었잖아요… 우리 수원에서도 눈 봤잖아요 “

“그렇네”

“그렇죠!”

“수플레 케이크 먹어봤어요? “

“아뇨. 보기는 봤어요”

“폭신폭신한 거 먹으러 갈래요?”

“좋아요!”

“뭔지 알고 좋다는 거예요?”

“몰라요. 폭신폭신하면 맛있겠죠!”


수플레 케이크를 먹어봐야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그냥 팬케이크라고 생각했기도 했고, 계란으로 만든 폭신한 케이크라서 그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는 게 좀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은연중에 했었다.

뭐든 해보면 거의 엇비슷하게는 흉내 낼 수 있기 때문에 정말 궁금한 맛이 아니라면 집에서 만들지 못하는 디저트를 주로 사 먹었었다.


거두절미하고 먹어보자 마음먹었으니 근처에 판매하는 곳을 찾아갔다. 체인점 카페 ‘백금당’.

카페 하던 시기에 유행처럼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봤던 거 같다. 접시에 읽을 수 있는 한자로 적혀 있어 기억이 났다. 체인점보다는 개인카페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첫 방문이니 기대를 안고 들어갔다.

크림과 과일을 곁들여서 먹으면 폭신한 버전의 계란빵? 이 입안에서 함께 뒤섞인다.

엄청난 맛과 향을 가진 그런 건 아니지만 차가운 겨울에 놀다가 들어와서 먹는 달콤한 디저트는 뭔들.

접시에 한가득 플레이팅 되어 나오니까 배고픔도 든든히 채워준다.

함께 시킨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삼키면, 끝나가는 주말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눈 위를 걷듯 폭신한 수플레 케이크. 구름을 한입 떠먹으면 이런 맛을 낼까?

몽글 차오르는 달콤함이 입안 가득 번진다. 당이 퍼지면서 미소가 지어지는 건 기분이 좋아서 일거다. 혹여 얼굴이 붉어졌다면 그건 촌병일 거야.

사랑은 아니고 그렇다 해서 사랑이 아닌 것도 아닌 그런 감정. 누군가에게 향하는 마음이자 그런 내 모습에 만족감을 느끼는 나르시시즘 같은 거…


쌓인 눈도, 폭신해 보이는 구름도, 말랑 촉촉한 수플레도 또렷이 기억하는데 너만을 지워본다.

행복했던 내 겨울을 통째로 지우진 못하겠어서... 도려낸 자리가 휑하게 남았다.

메꾸고 싶지 않아 비워둔 자리엔 다시 겨울이 왔다.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드리우고 ‘콜록’ 감기이자 열병에 앓아누워서 생각하지 않겠노라 하며 떠올린 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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