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음식에서 살아남기
독일에 오고 가장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식습관이었다. 처음 독일 음식을 접했을 때는 모든 음식이 너무 짜고, 느끼했다. 간이 세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짜다’에 가까웠다. 간장과 고추장 등의 장류들로 음식의 간을 맞추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권 국가에서는 간을 맞추기 위해 오직 소금만을 사용한다. 입독 다음 날에는 난생처음으로 ‘학센(독일식 족발 요리)’을 먹었는데, 예상과 다른 맛에 크게 실망했다. 껍데기와 비계는 너무 기름져 느끼했고, 고기는 소금에 절여진 장조림을 씹는 것 같았다. 지금은 최애 음식이 된 ‘아우프라프(독일식 오븐 스파게티 요리)’도 처음에는 마냥 짜게만 느껴졌다. 내 입에는 이렇게나 짠데, 유럽 사람들 입맛에는 그렇지 않은 건지 어느 가게를 들어가도 테이블에는 늘 소금과 후추가 구비되어 있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지. 그렇게 짜고 맛없게 느껴졌던 독일음식들이 먹으면 먹을수록 익숙해지고 맛있어졌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짜고 느끼한 독일 요리에 적응하며 적당한 간의 음식에는 만족을 할 수 없었고, 매 끼니 치즈를 찾게 되었다. 다이어트의 최대 적인 염분과 지방까지, 살이 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독일에서 사 먹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양이 방대했다. 길거리 음식 ‘듀룸(독일식 케밥 요리 '되너'의 한 종류로 빵 대신 또띠아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 하나를 사 먹더라도 두 끼는 거뜬했다. 웃기게도 독일에서 산 지 1년이 다 돼갈 때 즈음에는 팔뚝만한 듀룸을 10분 만에 먹을 수 있는 위장의 크기로 성장했다.
그렇게 살이 5킬로 정도 쪘을 때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이유는 살을 빼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사실 건강 때문이었다. 그맘때 즈음 와인과 위스키에 빠져있을 때였다. 매일같이 술과 함께 짜고 자극적인 음식들을 먹으며 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깨어있어도 하루종일 피곤했다.
다행히도 나에게 맞는 다이어트 음식들을 빠르게 찾으며 수월하게 식단 관리를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생소한 식재료들을 찾는 것도 쏠쏠한 재미 중 하나였다. 셀러리, 아보카도, 풋사과, 비트, 루꼴라, 후무스 등 써본 적 없던 새로운 식재료들로 요리를 하며 채소와 과일에 대한 새로운 취향도 발견하게 됐다. 다이어트 중간중간에는 고생한 나를 위한 보상도 빼놓지 않았다.
식단을 시작하며 가장 좋아했던 순간은 아침 시간에 차 한잔과 함께 즐기는 브런치 타임이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비로소 내 입맛에 딱 맞춘 레시피로 완성한 ‘아보카도그릴어니언치킨 토스트’는 나중에 브런치 가게를 차려서 팔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식단뿐만 아니라 다이어트를 하며 느낀 의외의 장점도 있었다. 운동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운동에 갔다 와서 씻는 등의 생활을 반복하며 하루를 짜임새 있게 ’ 루틴화’할 수 있었다. 운동을 가기 전 영양제를 챙겨 먹고, 운동 중 수분 충전을 위해 자주 물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고, 운동 후 집에 와서 건강식을 만들어 먹는 취미도 생겼다.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 독일에서 얻은 7킬로에도 장단점이 있었다. 독일 음식을 먹으며 살이 쪘지만, 그 덕에 요리에 재미를 붙였고, 건강한 식단과 생활 습관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