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빠진 글
노을을 바라본 용기로 아침을 맞는다.
가볍게 시작한 글이 무거워져 재활용도 아닌 쓰레기통에 버렸다.
가볍게 시작한 산책에서 나를 홀린 건 벚꽃의 꼬드김과 목련의 순박함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의 숨구멍을 활짝 열어주는 목련과 벚꽃,
그 아래 샛노란 개나리들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꽃 피우기를 경쟁하는 봄이다.
노랗게 물든 손끝은 하늘을 가리킨다.
구름 한 조각 입에 물고 달려온 호기심이 내 발밑을 간지럽힌다.
쑥이다.
쑥덕, 쑥떡, 웃기지 마!
무슨 일일까, 쑥덕댄다
뭐가 그리 웃길까, 여기저기 쑥들이 쑥덕쑥덕 거린다.
쑥이 좀 더 자라면 부드러움이 사라지고 약기운만 남아 떡으로 만든단다.
이제 곧 봄의 한복판에선 친구들의 쑥떡자랑이 이어진다. 작년에도 그랬으니 올해도 기다려지는 쑥떡이다.
교회언니 순향 님이 깊은 골짝에서 손수 뜯어 온 쑥을 주셨다.
제철 음식이 보약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시는 분이다.
쑥만 주시는 게 아니라 레시피도 알려 주셨다.
생 콩가루 묻힌 쑥,
계란에 살짝 담갔다가, (손 빠르게)
끓는 다시물에 된장 한 스푼만 풀어넣고,
살짝 한 김 올린 후 먹어야 진한 쑥향이 난다.
(냄비 뚜껑을 닫고, 바로 불을 끄는 거 중요해)
남편도 한 그릇 더 주문, 거기다 맛깔스러운 남편의 표현도 걸작이다.
"온몸이 봄에 빠졌다."
쑥을 준 사람이 좋은지, 쑥이 좋은지.
둘 다 좋다.
봄기운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 쑥국은
또 다른 마음으로 이어간다.
글 쓸 마음이 살아났다.
내 옷깃에 닿은 너의 향기,
눈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수줍은 맞장구에 심술궂은 봄바람이 불어댄다.
"우리 옷 바꿔 입자"
개나리는 벚꽃이 부러워 죽겠다는데 벚꽃은 노란 개나리색 옷이 너무 돋보여 한번만 입어보고 싶다고 한다.
나는 며느리의 나이가 부러운데, 며느리는 시어미가 노년의 한가함을 즐기는 게 얼마나 부러울까 지레짐작케 된다. 4월에 태어난 꽃들 사이로 나와 며느리 생일도 끼여있다
다정한 봄바람, 봄스런 귓속말로 전한다.
'내일 지실이 생일이야!'
마음 가는 대로 가다 보니 신세계 백화점에 발길이 닿았다.
(오랜만에 간 신세계는 말그대로 新 世界였다.)
고맙다는 말대신 말수가 적은 며늘님은 작년에 선물했던 향수도 거의 매일 사용한다. 출근 때마다 스치는 향기에 시어미는 흐뭇하기만 하다.
올해는 해마다 선물했던 향수에 화분하나를 더 선물할 참이었다. 백화점 꽃집코너에서 처음 본 다육이, 취설송 화분으로 정하고 계산하는데 꽃 냉장고의 후리지아를 발견했다. 함께 후리지아꽃 몇 송이도 포장했다.
이 타이밍을 놓칠세라 또 남편이 한방 날린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일지도 모른다" 라며 행복한 money 봉투를 꺼낸다
시어미의 며느리 사랑도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만 할까...
내일 아침 만개 할 며늘님의 미소로 미리 행복한 저녁이다.
며느리에게 줄 선물과 케이크를 고르다 문득, 곧 다가올 내 생일에 '뭘 받고 싶냐고 물으면 뭘 받고 싶다고 하지...' 혼자 설레발치며 봄철에 어울리는 팔찌를 뚫어지게 봐 두었다.
철없는 시어미의 시선은 또 다른 희망사항이다.
옷쟁이시절 여름 비수기는 나만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일터를 잠시 떠나는, 될 수 있으면 멀리 떠나는 여행으로 보상했었다.
어느 해 미서부 여행 중, 요새미티 공원카페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담아 둔 모습이 있었다. 노부부가 세상 걱정없이 여유롭게 한 손엔 책을, 한손엔 커피를 들고있는 모습이 마치 노을진 한폭의 그림 같았다. 나의 노년에 로망이 되었다.
보름 후 내 생일, 미리 떠올려 보자.
팔찌가 빛나는
한 손엔 커피, 한 손엔 책.
꿈도 오래 굴리다 보면 현실이 되어
이렇게
찾아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