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없는 빛 · 금박의 가면 · 얼굴이 사라진 시간
이 시집은 선형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모든 페이지는 한 방향이 아니며,
당신의 움직임에 따라
의미는 생기거나 사라집니다.
이 책은 빛으로 꿰어진 공간이며,
질문 이전의 언어가
지금도 조용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읽지 말고,
기억처럼 지나가 주세요.
정오가 쏟아졌다.
빛은 뼈마디를 더듬었고,
살 아래로 내려가
내 안의 윤곽을 풀어냈다.
나는 서 있었고,
몸은 그림자를 만들지 못한 채
자신을 바깥으로 흘려보냈다.
빛은 나를 통과했고,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 안의 경계는 터졌고,
피부 아래의 울림은 멈췄다.
살 아래 무게가 빠져나간
조용한 자리.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은 웃음을 붙였고,
나는 말보다 먼저
입꼬리를 위로 접었다.
광대를 들어올리고,
눈썹을 계산했고,
이마를 조금 내렸다.
나는 스스로를 만지지 않았고,
그들의 기대에
얼굴을 빌려주었다.
숨은 목 뒤로 흘렀고,
말은 혀밑에서 식었다.
표정은 접힌 채 펴지지 않았다.
식은 말이 가라앉은
닫힌 방.
나는 걸었고,
발은 바닥을 찾지 못했다.
피부는 공기를 밀었지만,
밀려오지 않았다.
나는 얼굴을 들었고,
눈동자는 나를 지나
다른 쪽을 보았다.
이름은 들렸고,
입술을 지나
내게 도착하지 않았다.
시선은 멈췄지만,
나를 향해 닫히지 않았다.
스스로를 받지 않은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