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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3: 박근혜/최순실

by 시산

1. 박근혜–최순실:

초월 충동의 유령적 재현


1. 그 이름은, 대리된 초월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 많은 사람은 물었다.

도대체 누구?

그의 이름은 권력의 무대에 정식으로 오르지 않았다.

공적 권한도, 민주적 대표성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고,

공공 기금을 좌우했으며,

국정을 주물렀다.


그는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권력을 감응한 자였다.



2. 최태민의 유령은 떠나지 않았다.

최순실은 최태민의 딸이다.

그 자체로 한국 초월자-대역 구조의 ‘2세대 전승’이 일어난 셈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단순히 아버지의 명망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 자리에 “어떻게” 들어갔는 가다.


그녀는 설득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하지 않고 조율했고,

존재하지 않고 통과되었다.


그녀는 권력과 언어 사이의 ‘빈 공간’ 속으로 스며들었고, 바로 그 공간이

박근혜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초월자 자리였다.


✴︎ 유령적 귀향 (Spectral Homecoming)

초월 충동이 스스로 귀향하지 못할 때, 감정의 공백을 타인이 대신 점유하여 ‘귀향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감응 구조. 이는 실제 귀향이 아니라, 귀환의 연극이다.



3. 박근혜는 왜 최순실을 거부하지 않았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정무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존재의 귀향을 스스로 포기한 한 인간의 비극에 가깝다.


박근혜는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를 넘지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했고,

그 그림자 안에서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녀는 국가를 향해 연설했지만,

그 말은 최순실의 입술에서 다듬어졌다.


그녀는 리더였지만,

그녀의 감정은 유령의 손에 위탁되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초월 충동이 자기 귀향을 포기하고,
타인의 언어와 감응에 “완전히 점유당한 상태”였다.



4. 국정농단은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감응의 구조였다.

이 스캔들은 단순한 부패 사건이 아니었다.

제도 밖에서 감정의 리듬을 점유한 유령이,

국가 시스템의 표면을 조용히 미끄러지듯 통과한 사건이었다.


최순실의 존재는 이미 2007년부터 감지되었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이

최태민-최순실 관계를 이용해 박근혜를 공격),

정치권은 그것을 묵인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위험한 진실이라기보다,

익숙한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빛의 뒤에 있다.



5. 대중은 왜 그것을 외면했는가

사람들은 최순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다만, 그녀가 ‘그럴 리 없다’는 감각을 깨뜨릴

용기를 갖지 못했다.


그녀는 풍문처럼 있었고,

그 풍문은 모두가 눈을 감고 넘어가도 되는 방식으로 퍼졌다.


유령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너무 가까이 있을 수 있다.


그녀는 그렇게 가까웠다.

그래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6. 유령은 어떻게 국가를 점령하는가?

최순실이 작동한 방식은

논리도, 전략도, 권력도 아니었다.

그녀는 “감응의 공간”이었다.
박근혜는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박근혜는 그녀에게 기대었다.
박근혜는 그녀를 통해 위로받았고,

판단을 유예했고,

고독을 면제받았다.


최순실은

이성의 절차가 실패한 지점에,

감응으로 침투한
유사 초월자의 결정적 사례였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재단했다.


그녀는 책임지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녀를 따랐다.



7. 감응의 정치: 언어 없는 귀향의 구조


이 모든 구조의 핵심에는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말이 있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포기한 자’의
위탁이 있었다.


대중은 분노했지만,

그 분노는 실은 최순실 개인에게가 아니라,

자신이 그것을 “몰랐다는 사실”에 대한 자기혐오였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그것이 유령적 초월자의 귀향 구조다.


그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부재는 너무나 명확히 느껴진다.

그는 말하지 않지만,

모든 것이 그녀의 손을 거친다.



8. 한국 사회는 왜 그 감응을 방치했는가?

왜 우리는

“이상한데”라고 느끼면서도

그 구조를 무너뜨리지 못했는가?


그것은

그 감응이 어느 정도는

우리 안의 결핍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감정적 구조사회적 반응>

지도자의 말이 공허하다:
감정을 대신 읽어주는 누군가를 원함
공공 시스템이 냉담하다:
관계를 감응으로 해결하려는 무의식적 바람
정치가 너무 이성적이다:초이성에 대한 피로
→ 감성적 유사 초월자 이미지에 대한 흡수


결국,

우리는 자기 존재를 의탁할 언어를 잃은 상태였고,

그 틈을 최순실이라는 감응의 유령이 점유한 것이다.


* 참고자료


[^1]: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자료집” (2017), 국회 특별위원회.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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