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계획은 있어요?
결혼 계획 있으세요? 자녀 계획은요?
2030 여성이 취업 면접을 본다면 아주 흔하게 받는 질문이 바로 결혼과 자녀계획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어느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는 면접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금지라고는 하는데 여성 면접자에게 결혼과 자녀 계획을 묻는 회사는 여전히 흔하게 존재한다. 어째서 수많은 회사가 여성면접자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하는 걸까? 십중팔구 육아로 인한 직무 공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보육교사인 나의 지인 H는 이직을 위해 면접을 봤을 때 원장에게서 결혼과 자녀계획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교제하던 남자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었지만 결혼은 1~2년 후에 할 계획이었던 그녀는 면접에 합격하면서 이직에 성공했다. 그런데 입사 3개월 만에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결혼을 앞당겨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H의 직장은 모든 직원이 여성인 데다가 아이들을 돌보는 기관인 어린이집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임신을 한 H에게 돌아오는 원장의 시선은 싸늘했다. 원장으로부터 면접 때는 임신계획이 없지 않으냐고 질책을 들은 그녀는 좋지 않은 몸상태와 원장의 눈초리를 견디지 못해 결국 입사 5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임신을 계획해서 아이를 갖는 부부도 있지만 예상치 못하게 임신을 하게 되는 부부도 존재한다.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할 예정인 여성이 아이를 갖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많은 회사는 여성 직원의 임신을 반기지 않는다. 임신을 하게 되면 찾아오는 몸의 변화로 인해 업무에 차질이 생기고, 훗날 직원이 출산·육아휴직을 사용한다면 그 공백기간 동안 근무할 대체 인력을 새로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회사가 직원 채용 면접 때 결혼과 자녀계획을 물어보고 빠른 시일 내에 자녀 계획이 있는 여성은 채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직무 공백이 발생하지 않을 직원을 뽑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저출생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임신계획이 있다는 이유로 채용에 불이익을 준다면 어느 여성이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는가. 요즘같이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정의 생계를 원활히 유지하기 힘든 시대에 여성에게 직업과 자녀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마 많은 여성이 자녀를 포기하고 직업을 선택할 것이다. 자녀 양육과 직장생활을 동시에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나온 제도가 출산·육아 휴직인데, 애초에 회사가 휴직제도를 사용하게 될 사람을 뽑으려고 하지 않으니 사내복지에 포함된 이 제도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임신한 직원의 몫까지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동료들의 입장도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출산·육아휴직 제도가 잘 되어있는 회사는 모성보호기간과 같이 임신한 직원이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해줄 것이다. 이때 임신한 직원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된다. 하루에 한두 시간쯤이야 업무를 대신해 줄 수 있다고 쳐도, 만약 대체 인력을 뽑지 못한 상태라면 휴직한 직원의 업무까지 동료들이 나눠서 해야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휴직했다가 돌아온 직원이 자녀를 곧바로 임신해 휴직을 연이어하기라도 하면 동료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면 회사입장에서는 다음 직원 채용 때 자녀계획이 있는 여성은 당연히 채용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이는 참 풀기 힘든 딜레마다. 출생률 상승을 위해 고안된 제도가 출산·육아휴직 제도이고, 이 제도를 활용해야 많은 부부가 자녀양육을 하면서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휴직제도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게다가 육아휴직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직원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남성의 육아휴직률은 2021년 기준 4%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육아의 몫은 여성이 맡아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남성직원들이 자유롭게 육아휴직 신청을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출생률이 상승하려면 여성에게 육아와 직장생활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취업 면접자리에서 자녀계획이 있는지 묻는 관행부터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이 관행이 사라지려면 회사에서 여성도 남성도 출산·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정부차원에서 직원에게 육아휴직을 보낼 때마다 회사에 이익을 주는 것과 같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출산과 직장 생활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