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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수 Jul 03. 2023

남이 대신 키워주는 내 아이 ②

우리나라 어린이집의 환경

우리나라 부모들은 대개 자녀가 만 1-2세가 되었을 때쯤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한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모유수유 시기가 지나고 나면 생후 12개월조차 되지 않았는데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어린이집은 부모의 자녀 양육 부담을 덜어주고 아이들의 사회화를 비롯해 기본생활습관 및 규칙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큰 장점이 있다. 따라서 출생률 유지와 상승을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할 기관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기관이 과연 부모와 아이들에게 양질의 보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까? 한때 어린이집에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나는 이 질문에 절대 NO라고 대답하고 싶다. 현재 우리나라 보육 서비스의 질은 갈수록 쇠퇴하는 중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번 장에서 설명해보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아동 수가 몇이나 되는지 먼저 알아보자. 연령별로 만 0세는 1:3, 만 1세는 1:5, 만 2세는 1:7, 만 3세는 1:15, 만 4세는 1:20, 만 5세는 1:25의 비율로 교사에게 아이들이 배정되고 있다. 1:7 비율인 만 2세까지는 그래도 어떻게 감당해 볼 만한 인원이다. 그러나 만 3세부터 15명으로 확 뛰더니 그 이후로는 교사 한 명당 20명에서 25명의 아이들을 맡아야 한다. 요즘 초등학교도 한 학급당 20명 남짓한 아이들이 생활하는데, 초등학생보다 발달이 훨씬 덜 된 아이들을 교사 한 명이 20여 명씩이나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힘들지 감이 오지 않는가?


학기 초인 3, 4월에 만 3세 아이들을 보면 옷을 혼자 입고 벗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이고 양치도 스스로 하지 못할뿐더러 대근육 발달이 완벽히 되지 않아 부딪치고 넘어지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발달이 또래보다 늦어서 기저귀를 떼지 못한 아이도 반마다 한두 명씩은 꼭 있다. 아이 한 명을 집중적으로 케어하기도 빠듯한데 이렇게 열다섯이나 되는 미숙한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꼼꼼하게 챙기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교사 대비 아동수가 높을수록 보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국공립 어린이집의 경우 반마다 보조교사도 있고, 통합 어린이집의 경우 특수교사나 장애영유아 보육교사와 공동 담임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정이 좀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아동의 경우 비장애 아동보다 더 세심한 케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만 3세 기준 교사 두 명이 한 교실에서 18명(비장애15+장애3)을 본다고 해서 교사대 아동 비율이 1:9로 줄어드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장애 정도에 따라 어떤 아이는 교사가 1:1로 전담 케어를 해도 부족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교사 대 장애아동 비율도 1:2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혹 내 아이가 어린이집 선생님께 제대로 챙김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섭섭함을 느꼈던 부모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루만이라도 어린이집 현장을 면밀히 들여다본다면 교사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사 한 명당 담당하는 아이들의 수가 줄어야지 교사의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가 낮아지면서 보육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은 통계가 증명해 준다. 현재 서울시에서 교사 대비 아동수를 줄이는 사업을 진행 중인데 시범 사업 결과 아이들의 안전사고가 확연히 줄어들었고 보육 서비스에 대한 부모들의 만족도도 올라갔다고 한다. 부디 서울부터 시작해 전국 모든 어린이집의 교사 대비 아동 수가 줄어들길 바란다.


또 한 가지, 교사대비 아동수가 줄어든다면 어린이집이 아이들을 모집하지 못해 폐원하는 일도 줄일 수 있다. 출생률 감소의 여파로 폐원하는 어린이집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젊은 부부들이 많이 거주하는 신도시의 어린이집 사정은 그나마 낫지만 인구가 적은 지역이나, 한 도시 안에서도 아이들이 적은 동네는 어린이집이 원아를 모집하지 못해 결국 폐원 수순을 밟는다. 그러면 그 어린이집에 다니거나 다닐 예정이었던 부모들은 아이를 보낼 다른 어린이집을 급히 찾아다녀야 한다. 맞벌이 부부일 경우 필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잘 보내던 어린이집이 하루아침에 폐원해 버리면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기분일 것이다.


내가 근무했던 어린이집도 입사할 당시엔 정원이 꽉 찼는데 아이들이 점점 신도시로 이사가고 유치원으로 옮기면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더니 나중엔 20명 넘도록 정원을 채우지 못해 결국 두 반이었던 만 3세 반을 하나로 줄이고 만 0세 반을 신설했다. 자리가 없어 대기를 걸어놓고 기다려야 할 정도였던 장애아동도 입소 문의가 점차 줄더니 그 해엔 장애아동 정원의 절반을 겨우 넘은 상태로 새 학기를 맞이해야 했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아동의 수만큼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에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미달난 아이의 수만큼 재정이 구멍 난 상태로 운영을 해야 한다.


나는 현재 우리나라의 어린이집 운영 시스템 중에서 이 부분을 가장 지적하고 싶다. 원아 모집을 하지 못해 어린이집이 폐원하게 되는 이유도 결국엔 어린이집 운영에 필요한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시설 유지비, 교재 교구비, 각종 현장체험학습비, 간식 및 점심 재료비, 단체복, 졸업 선물, 각종 행사 진행에 필요한 비용 모두 어린이집 운영비로 사용한다. 정부 지원을 받는 국공립 어린이집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운영에 문제가 생기는데 민간 어린이집은 아마 사정이 더 안 좋을 것이다.


운영비가 모자라면 교사들의 월급 지급에도 문제가 생긴다. 보육교사들의 월급은 나라에서 지급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야근수당을 비롯해 기타 정부 미지원 수당은 어린이집의 운영비에서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어린이집 정원이 미달되면 재정 운영이 어려워지고 그로 인해 교사 월급을 제대로 줄 수 없으니 교사를 해고할 수밖에 없다. 교사가 없는데 아이들을 누가 보겠는가. 결국 폐원 절차를 밟게 되는 거다. 출산을 장려하는 나라에서 부모 대신 아이를 키워줄 어린이집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여담으로 말하자면, 보육 업계에서는 일정 호봉이 넘어가면 이직이 잘 되지 않고 이직하더라도 호봉을 깎는 조건으로 입사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다. 이는 호봉이 높은 교사일수록 어린이집 운영비에서 나가야 하는 수당이 크기 때문이다. 나의 경력만큼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을 사람은 없다. 보육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선 열악하기만 한 보육교사들의 처우개선도 필수불가결하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공립 어린이집마저 재정난으로 문을 닫고 있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 조차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기관이 사라지고 있는데 어린이집 운영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선하지 않는다면 출생률은 살아날 수가 없다.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 마련되어야 부모들이 아이를 낳고, 그 좋은 환경을 직접 경험해야 둘째 셋째를 안심하고 낳는다. 따라서 정부는 자녀를 낳은 부부가 가장 빨리,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우리나라의 양육 환경이 어린이집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이에 따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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