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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수 Jun 20. 2023

남이 대신 키워주는 내 아이 ①

5060 세대들의 황혼 육아

현재 우리나라 초혼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인 것을 생각해 보면 이들 부모의 평균 연령은 50대 중반 이상일 것이다. 웬만한 부모들은 자식을 키워 결혼까지 시켜놓으면 30여 년의 길고 길었던 부모로서의 책임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겠지만 해방의 기쁨은 아주 잠깐이다. 그렇게 품에 안고 싶었던 손주를 보게 된 5060 세대들은 새로운 과제를 맞닥뜨리게 된다. 이름하여 황혼 육아. 이는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없는 자녀를 대신해 조부모가 손주를 기르는 일을 뜻하는 단어다.


나는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2년 동안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근무를 하면서 관찰한 결과 아이를 등·하원시키는 보호자 중 상당수가 아이의 할아버지나 할머니(친가 외가 구분은 따로 하지 않겠다)였다. 그나마 아침엔 부모가 출근하면서 아이를 등원시키긴 해도 하원할 땐 조부모가 손주를 데리러 오는 일이 꽤 많았다. 아이의 등·하원을 조부모가 맡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부가 맞벌이를 할 경우 어린 자녀를 돌볼 시간이 없으니 근처에 사는 조부모가 자녀 부부를 대신해 손주를 어린이집까지 등·하원시켜주는 것이다. 손주를 등원시킨 후엔 그나마 육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지만 하원 이후는 다르다. 조부모는 자녀 부부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손주를 돌봐줘야 한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직장인의 퇴근 시간을 생각해 보면 빨라야 5시, 늦으면 7시다. 만약 야근을 하게 된다면 퇴근 시간은 8시, 9시, 10시... 말 그대로 퇴근 시간에 기약이 없어진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퇴근하기 전까진 집에 갈 수 없으니 일하는 동안 육아의 몫은 아이의 조부모가 맡게 된다. 조부모가 근처에 살면 그나마 대리 육아를 쉽게 부탁할 수 있겠지만 아닌 경우가 문제다. 그러면 평상시에 아이를 조부모댁에 맡겼다가 주말에만 데려오거나, 조부모가 평일에만 자식내외와 함께 살며 손주를 돌보기도 한다. 실제로 함께 근무했던 동료 중에 이런 케이스가 있다. 5세 자녀를 둔 그녀의 집엔 일요일 저녁마다 시어머니가 방문한다. 그리고 그녀의 시어머니는 평일 내내 손주를 돌보다가 금요일 저녁에 아들 부부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제야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금요일만되면 자신이 빨리 퇴근해야 시어머님이 집으로 돌아가신다면서 퇴근을 서두르던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시어머니와 평일마다 함께 생활하고 있다.


퇴근 시간이 그리 늦지 않은 부모는 그 시간까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기만 하면 될 줄 알겠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다. 만일 어린이집에서 일이 생겼을 때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케어해 줄 사람이 없다면 부모도 어린이집도 서로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코로나가 한창 극심했던 시기에 원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아이들을 긴급하원 시키는 일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어린이집에서는 긴급하원 공지를 올리고 부모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돌려 아이를 데려가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급히 반차를 쓰고 온 부모도 있었지만 업무 도중에 도저히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없는 상황인 부모도 당연히 있었다. 데리러 올 조부모마저 없었던 아이는 결국 텅 빈 교실에 늦게까지 남아있어야 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갑자기 열이 나거나 몸이 아픈 일이 잦다. 놀다가 다치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상태에 따라 하원이 필요한 상황이 자주 벌어지는데 이때 아이를 데리러 올 부모도 조부모도 없다면 어린이집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아이들한텐 약도 함부로 먹이면 안 되기 때문에 결국 아이는 부모가 퇴근하고 데리러 올 때까지 아픈 상태로 원에 있어야 한다. 자녀 때문에 예정에 없던 반차를 갑자기 써야 하는 상황도 난감한데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면 평범한 직장인은 상사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을 것이다. 직장 측에서도 당일 반차가 잦은 직원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현실이 이렇다 보니 많은 젊은 부부들이 부모에게 자녀 양육을 부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란 없다. 맞벌이 부부는 자녀를 대신 돌봐주는 부모에게 보통 용돈으로 감사함을 표시한다. 베이비시터를 고용해서 주는 월급 보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이 훨씬 합리적이기야 하겠지만, 어쨌든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려면 지불해야 하는 일정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가정을 부양하려면 맞벌이를 해야 하고, 맞벌이를 하려면 아이를 타인에게 맡겨야 하고, 아이를 타인에게 맡기려면 비용이 발생하고,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맞벌이를 포기할 수 없고.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황혼 육아를 하는 당사자의 입장은 어떠할까? 사실 손주도 어쩌다 한 번씩 봐야 귀엽고 즐겁지, 60넘어가는 몸으로 에너지 넘치는 손주와 하루종일 살을 부대끼며 지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기관에서 조사한 결과, 황혼 육아를 하고 있는 응답자 중 87.5%가 아이를 돌보는 데에 피곤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육아 시 어려움으로는 '신체 한계' 항목이 가장 많이 선택됐고, '개인시간 부족', '정신 스트레스', '육아 지식 부족', '자녀와의 갈등' 순서로 응답률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손주 육아로 여가와 취미생활을 잃었으며 친구와의 교류도 끊겼다고 한다. 이 설문 결과는 조부모들이 손주를봐주는 대가로 받은 용돈 몇 푼과 자신의 희생을 맞바꾼 것이나 다름없음을 보여준다.


황혼 육아는 절대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젊고 창창했던 30대에 하는 육아와 신체 기능이 약해진 60대에 하는 육아는 소모되는 체력부터가 천지 차이다. 실제로 황혼 육아 중인 5060 여성 중 상당수가 어깨, 허리, 손목 등에 통증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도 30년 전과 현재가 많이 달라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운 5060 세대들이 어찌 손주를 요즘 트렌드에 맞게 키울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황혼 육아를 하다 보면 부모자식 간의 갈등이 빈번히 발생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혼 육아의 당사자들은 자식이고 손주라서 노후의 시간과 희생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힘들면 일 안 하고 돈 안 받으면 그만인 베이비시터들과는 처지가 아예 다르다. 손주 한 명 대신 봐주기도 이렇게 몸과 마음이 벅찬데, 만약 자녀가 둘째 셋째를 연달아 낳기라도 하면 아찔하다. 노후를 손주 양육으로만 보내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황혼 육아에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조부모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 맞벌이 부부의 현실이다. 황혼 육아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이 확대된다면 상황이 나아질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부모가 직접 아이를 양육하게 만드는 것이다. 맞벌이 부모가 아이를 직접 양육하기 위해서는 출퇴근 시간이 적절한 근무환경, 너그러운 사회 분위기, 정부의 지원 모두가 필요하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 파트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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