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비난은 제 뼈를 스스로 뜯어먹는 것과 같다. 고통이 심해질 뿐 아니라 뜯겨나간 뼈 는 약해져 점점 자신을 지탱하기 어렵게 된다.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성장을 꾀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흔히 접하게 되는 장애물은 바로 '남 탓' 이다. 이는 '투사(projection)' 라는 심리기제로도 흔히 알려져 있다. 우리는 사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인생의 숙제에 대해 수 많은 남 탓을 하고, 그것이 실제의 인과라고 굳게 믿고 있다.
누구나 살면서 큰 후회나 수치심, 잠을 이루지 못할 억울함을 느끼는 사건을 한 두번, 혹은 몇 번 경험하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분노하며, 그의 존재와 이기적인 행동을 비난한다. 비난의 골이 깊어지면서 우리는 그의 굴욕적 사죄나 파멸을 갈망하기도 한다.
고통이 심해짐에 따라 우리는 이 비난의 고통이 어느새 오롯이 나를 향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악다구니를 당장 그치는 것은 또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다.
그 비난이 아무리 맹렬하더라도 대개 그것은 타인에 닿지 않고 자신에게 고통을 준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욕하며 자신의 넓다리뼈를 뜯어먹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지옥도일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 악의 사슬을 벗어날 것인가.
어떤 중대한 사건이 일어날 때 그것은 누구 한 명, 혹은 특정 상황만의 잘못이 아니다. 그 사건에 연루된 모두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자신의 역할을 애써 축소하고, 상황을 둘러싼 타인들에게 여러 이유를 붙여 책임을 미룬다. 그가 나이가 많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면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 막연히 높은 윤리적 기준이나 책임을 핑계로 삼으면 되니까. 다른 성별 또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동일 성별끼리 모여 타 성별을 욕하는 모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던, 그것이 정말 그들의 잘못이라면,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문제가 어떻게 되든 내 마음의 안정이나 행복과는 관계 없다. 나는 그 사건에 연루된 나의 몫을 책임져야 할 뿐이다.
고통의 원인, 그 중심에 자신을 가해자로 데려다 두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큰 용기가 필요해 몇 년이 걸리기도 하고, 평생에 걸쳐서 남을 원망하다 끝나는 경우도 적잖다.그러나 이는 꼭 해야 할 일이다.
'눈 앞의 문제를 외면하면 반드시 더 커져서 돌아온다.'. 이 규칙에는 예외가 없다. 나의 책임 (과오나 잘못 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에 대해 마주하고 인정해야 한다. 용기 있게 가시방석에 앉을 사람도, 그를 용서하고 안아 줄 이도 모두 당신이다.
사실 주변의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서, 당신이 문제를 마주하는 것을 막아주었을 수도 있다. 주변의 사람들이 가까운 사람들인 경우에 흔히 그렇다. 외모, 재산, 재능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랑을 쉽게 끌어들이는 경우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당신은 더욱 용기를 내야 한다. 그 이후에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사랑해주어야 한다. 타인에게 악을 돌리는 것보다 자신의 악을 마주하는 것은 몇십 배나 어렵다. 그 어려운 숙제를 해내기로 한 자신을 칭찬하고 용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