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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Dec 17. 2023

몹시 그리워하고 사랑한 연인

지난 2주간 나의 겨울밤을 분꽃 소리의 하모니로 물들게 해준 드라마 연인. ’병자호란‘이란 실패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조의 번민과 소현세자의 고뇌, 그리고 전쟁 이후 조선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만 했던 백성의 삶도 입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장현과 길채. 길채를 처음만난 순간 어디선가 들리는 분꽃 소리를 청각적으로 묘사해 사랑의 감정을 스스로 알아차린 장현은 이 순간부터 길채에게 스며들기 시작한다.


능군리에서 꼬리 아흔 아홉개가 달린 구미호라고 불리는 길채는 마을 도령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동시에 연준 도령이라는 한 사내를 마음에 품고 있는 터 였다.


그러다 마을 할배의 회혼례 날 오랑캐가 쳐들어왔다는 소식으로 어수선할 때, 길채는 사모하던 연준 도령이 아닌 귀찮게만 구는 장현을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된다. 위협을 맞닥뜨렸을 때, 믿고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찾게 된다는 우리 본연의 속성을 잘 표현해 주는 대목이였다.


이 드라마가 시대극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사극이라는 장르에 현대성을 자연스럽게 잘 녹여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령, 유치할 법 했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라는 가사를 드라마에 녹일 때나, 남녀간에 타는 ’썸‘을 드라마에서는 ’섬‘으로 둔갑한 대사 등이 그렇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청나라와 조선을 오가는 둘의 사랑은 점점더 애틋해져 가고, 만남과 이별은 반복된다. 그 사이 나타나는 감정선은 우리 사는 세상의 사랑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보고싶다‘는 단순한 이치를 위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길채가 바랬던건 ’봄엔 꽃구경 가고, 여름엔 냇물에 발 담그고, 가을에 담근 머루주를 겨울에 꺼내 마시며 함께 늙어가는 삶‘ 이였을지도 모른다. 그 삶에 이제는 장현이 함께 있었으면 하는.


드라마를 보며 느닷없이 눈물을 몇번 쏟기도 했다. 후회와 번민이 밀려와서다. 몇번의 우기가 지나야 괜찮아 질까, 언제쯤 나는 사랑의 속도와 온도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반성이 들었나보다.


몹시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연인 장현과 길채에게서 반성의 끝을 희미하게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변치 않을 사람에게 변치 않을 마음을 주는 것 뿐인데“라고 했던 길채의 마음에서 언제나 바라마지 않았던 그 사랑이란 깊고 긴 터널에서의 인내를 한 수 잘 배울 수 있었다.


”헌데 낭자, 방금 나보고 서방님이라고 하였소?“ 사랑하는 각시로부터 듣는 ’서방님‘이라는 한 단어가 나는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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