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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두부가 낫겠다

by 임기헌

매번 그런다 사람들은. 밥 한끼 먹자, 커피 한잔 하자는 얘기들을 귓전등으로 주고 받는다. 얘기인 즉슨 상대가 귀찮거나 관심도 없다는 얘기다. 그러다 그 상대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면 태도가 돌변한다.


사랑하는 오빠, 사랑하는 동생, 하며 마음에도 없는 활자를 어딘가에 새긴 채 살아생전에는 속내에도 없는 말을 건넨다. 가관은 하늘 나라에서 만나면 그간 못먹은 삼겹살에 소주한잔을 하자고도 한다. 이승에서는 결코 하기 싫은 행위를 죽어서야 하고싶은 모양이다.


왜 그러는 걸까. 하물며 어쩌자는 말일까. 생전에는 꼴도보기 싫다가 죽음에 맞닥들여야 인스타나 페북에 얘기거리가 생기니 그제야 아는 척을 하는건가. 누군가가 다치는건 허무맹랑하니 죽음 정도 돼야 ‘좋아요’ 갯수나 조회수가 올라가는 모양인가 싶다.


참,, 세상 모두가 꼴도 보기가 싫다. 나만 그런걸까. 아니라면 내가 세상을 적확하게 보고 있는걸까.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당에 들렸다. 종교나 믿음이라곤 없는 내가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다해봤다. 나 좀 빨리 데려가시라고. 고해성사 할테니 하나, 둘, 셋을 세면 나를 지옥 혹은 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내 삶은 1990년도까지가 참 좋았다. 인터넷과 폰이 발달하며 개떡같이 돼버린 지금 세상에는 미련도 없다. 공부를 뭐하러 하나. 한끼에 라면 10봉만 먹어도 연봉 10억은 우스운 요즘인데.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침묵 속에서’를 떠올린다. “이제 열둘을 세면/ 우리 모두 침묵하자.// 잠깐 동안만 지구 위에 서서/ 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 우리 단 일 초만이라도 멈추어/ 손도 움직이지 말자.” 시인은 “그렇게 하면 아주 색다른 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루만이라도 폰을 멀리하고 침묵해 봤으면 좋겠다. 다음 세대는 조금더 계몽된 사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우리의 이번 생은 완전히 망했으니까.


죽음이 코 앞에 다가오면 난 뭘할까. 제로콜라를 마실까, 아니다, 김치를 곁들인 두부가 낫겠다.


긴 하루였다.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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