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부터였나. 책을 10분 이상 집중해서 읽기가 힘들다.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블록버스터 급 액션이 눈앞에 펼쳐지는데도 20여분을 보고있자면 눈이 스르르 감긴다. 그러다보니 보다만 책과 영화들이 수두룩 하다. 다시 보려고 하면 앞선 내용은 새까맣게 잊고만다.
이상하다. 자다가 몽환적인 낌새가 느껴질 때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새벽에 서너번씩 잠에서 깨는건 여사다. 텅빈 집에서 혼자 악몽을 꾸다가 깰 때면 무서운 마음에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밝은 내용의 유튜브를 찾아 재빨리 영상을 틀게된다.
술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가끔 서울에서 찾아주는 에너지 넘치는 선후배들과의 만남도 그저 그렇다. 그토록 사랑했던 옛여친의 갑작스런 연락도 반갑지가 않다. 술에 잔뜩 취해 자기도 이혼할까, 하며 건네오는 우스갯 소리 마저 따분하고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가족들과의 자리도 의무적인 마음과 본능, 아버지를 대신한 책임같은 것들이 뒤죽박죽 섞인 기분이다.
퇴근 후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세수와 양치질 정도만 하고 눕는다. 그리고 보지도 않는 TV를 켜놓고 멍하니 있다가 잠이 든다.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럼 저절로 아침이 밝아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몸은 천리행군을 한것처럼 고된 느낌을 받는다. 아침밥도 귀찮을 때면 계란후라이에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대강 비빈 뒤 한끼를 때운다. 그러고나면 음식 따위는 종일토록 생각이 나질 않는다.
책 원고도 집중이 되질 않아 더이상 쓰질 못하겠고, 그렇게 좋아하던 축구와 등산도 흥미를 잃어 몇달간 클럽에 참여를 하지않고 있다. 사람들 발길이 잘 닿지않는 유서 깊은 세계오지를 탐방할 계획도, 경비행기 자격증을 따겠다는 목표도 차라리 세우지 말 걸 그랬나보다.
왜 이럴까.
희망을 품으려 애썼는데, 그리고 가족들에게 해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더이상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 싶지가 않다.
‘너는 왜 이토록 나를 떨리게 하니’ 하며 수줍게 고백했던 그 시절은 내가 지나온 시절이 맞는걸까. 기분좋은 떨림과 설레임, 열정 따위들은 이 지경이 된 나에게 다 무엇이었나.
강건너 안동병원과 안동경찰서 등의 네온사인이 강물에 비춰져 이 밤에도 윤슬이 드러난다. 언젠가 말없이 혼자 제주로 떠난 날, 그날 밤 애월 앞바다에서 보던 그 모습이다. 다른 점은 제법 많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책을 하고 러닝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밤9시가 넘어가는 지금 말이다.
지구 그림자에 반이 가려져 오늘은 제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달은 오늘도 우리 주위를 차분히 공전하고 있다. 지치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 지구의 생태계를 유지시켜 준다. 때로는 태양을 가려주고, 때로는 우리 지구에게 가려지기도 하지만, 괘념치 않고 스스로의 궤도를 따라 묵묵히 움직인다.
지치지도 않나봐?
나는 너무 지치는데.
밤은 너무 길고 어두운 걸.
이윽고 혼자 두어시간을 걷고 차가운 커피 한잔을 비워냈다. 내 마음을 누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