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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May 17. 2023

호고일당: 옛것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상형을 묻는다면 이제서야 ‘호고일당’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 같다. 즉슨, ‘옛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의미다.


언젠가 엄마랑 차를 타고 저멀리 바닷가에 바람을 쐬러 간 적이 있다. 엄마와 나는 언제나 차 안에서의 이야기로 여행의 시작을 날 세운다. 그 때 엄마는 어릴적 시골 동네 앞을 지나며 ‘동팔이’라는 동네 팔푼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시절 시골에선 누구나가 다 팔푼이처럼 여겨졌겠지만, 엄마 옆집에 살던 그 꼬마 아이는 늘 빈 깡통을 차고 마을 어귀를 돌며 감자 동냥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당시 엄마는 오빠들과 그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고 했다. 한국전쟁이 막 끝나고 1960년대 보릿고개 시절을 넘기던 시대의 일이다.


나의 어린시절은 1980년대. 88서울올림픽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아이가 선명하게 기억이 나고, 시골에서 할아버지 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같이 밭일을 나갔던 기억이 있다.


사촌동생들과 모여 작당을 한 뒤 할머니가 애써 심어놓은 수박서리를 하고, 저녁엔 사랑방에 둘러앉아 동네에 한 대 뿐인 낡은 TV 앞에 모여 신기한 듯 방송을 들여다 본 기억도 선명하게 난다.


이 외에도 얼마나 많은 추억이 기억의 용량을 채우고 있을지는 말해 뭐할까 싶다. 산업의 발달로 최첨단 기기가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네 삶은 이토록 목가스러웠다. 그 한가운데에는 ‘사람’이 있었고, 우리는 기기 대신 피부를 맞대며 함께하고 소통할 수 있었다. 먹을것이 있으면 나눠먹고, 이웃의 안부를 묻는건 여사였다.


그렇다면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에게 추억은 어떻게 기억이 될까. 온종일 폰만 보는 하루가 4~50년이 쌓인다면, 훗날 그들에겐 지나온 삶의 전부가 어떤 의미로 남게될까.


우리 엄마는 감자 동냥을 하던 ‘동팔이’를 소환하며 즐겁게 웃음 지었는데, 그들은 훗날 먹방 유튜버 ‘쯔양’을 소환해내며 참 많이 먹더라, 하며 쓴웃음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웬종일 유튜브를 보고, 카톡과 SNS를 들여다보며 타인을 염탐하는게 주된 일상이 되버린 요즘의 시대에 다가올 내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제 꿈은 오늘도 내일도 폰만 바라보는 거에요!!”하고 고백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 꿈은 쉽게 이루어지게 되지 않을까.


가끔 염증이 난다. 아니, 삭막하고 기가 막히기도 한다. 어딜가도 폰만 만지작 거리는 이들과 함께해야 하는 상황들이 영 별로다.


놀라운 건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하나같이 똑같은 항변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폰 중독이 아니야. 어쩌다가 한번 봐.” 감자 동냥을 하던 동팔이가 기가막혀 웃을 일이다.


사람들이 뭐가 뭔지도 모를 정도로 사회는 이토록 빠르게 변해버렸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으려 해도 의심부터 해야만 하는 관계가 자연스러워졌고, 같이 식사를 할 때에도 ‘먹방 유튜브’를 켜놓고 영상 속의 그들과 함께 밥을 먹는게 익숙한 풍경이 되버렸다.


이건 아닌데, 이게 딱 맞아 떨어지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난, 할수 있는게 많지 않아졌다.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 그 옛날 동팔이라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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