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크길 바랐던 거라고
정확히 어떤 것이 아이의 인격을 완성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괜찮은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란 어렵다. 육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친구에게 대충 키워도 잘 자라는 아이들이 있고 애지중지 키워도 왜 저렇게 컸나 싶은 아이들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이는 내가 답을 못 찾아서였다.
나의 엄마는 엄했고 체벌의 기준을 아직도 잘 파악하지 못했다. 어떤 날은 기분이 풀릴 때까지 맞았고 어떤 날은 그저 말로만 타이르고 넘어가기도 했다. 어떤 잘못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건 내가 미처 온전히 반성하지 못한 탓일까.
엄하게 자란 아이들은 바르게 자랐을까.
고등학생 때 무섭기로 유명했던 수학선생님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하거나, 묻는 말에 답을 못하거나,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세워두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혼쭐을 내시던 선생님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바른 자세와 바른 태도를 노력하는 동안 나는 마음속에서 왜 학습을 저렇게 통제된 분위기에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그날은 선생님이 타깃으로 나를 골랐는데 이유는 내가 집중하지 못해서 답을 잘하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전혀 반성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선생님은 나를 복도로 내쫓았다. 그때의 내 생각은 '어차피 저래봤자 엄마처럼 날 때리 지도 못할 텐데'라는 생각. 오히려 나의 공포는 '이게 엄마의 귀에 들어가면 무서울 듯'이었다.
동시에 자각했다. 나는 아주 예의가 없는 학생이구나. 복도에 서서 잠시 멍해졌다. 꼭 다른 사람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혼이 나지 않더라도 어른에게 예의를 갖추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그걸 하는 게 그 순간 어려웠는지 스스로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거짓말은?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주변에 나와 같이 엄하게 자란 친구들이 몇 있다. 우리는 참 거짓말을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고 잘한다. 거짓말을 하다가 들켜서 엄마한테 혼나는 날이면, '왜 내가 거짓말을 했지' 반성하기보다 '다음에는 더 잘 숨겨서 안 혼나야지'라는 생각이 컸다.
내가 많은 답을 찾지 못했지만, 엄격함에는 정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훈육에는 아이의 깨우침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의 해소가 아니라. 이런 사실을 알고도 내가 그저 받은 대로만 행동할까 봐 자식을 키우는 것이 꽤나 망설여진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 내 아이에게는 좋은 환경을 주고 싶겠지만, 좋은 환경을 알아야 좋은 걸 주지. 가난했던 사람의 아이는 그저 치킨을 자주 사주는 것으로도 그 사람에겐 더 좋은 환경일 텐데. 나는 이상(理想)을 무슨 수로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