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대통령조차 그 리스트에서 삭제되었다. 과학자도 없고 철학자도 없고 예술가도 밟혀 죽어버린
기분 나쁘게 고요한 세상
하긴 시끄럽지 않은 세상은 이미 죽은 세상 혼자 꾸는 꿈은 꿈이 아니다. 단지 진로 혹은 성취 사적 해프닝
긴 안목으로 큰 걸음 걷지 못한다면 스케일 키우지 못한다면 각자 제 입장에서
'나'하나만 전전긍긍 껴안고 있다면
외계인 쳐들어와도 밖에 나가 전선에서 싸우지 않고 집구석에서 징징거리게 된다.
더 높은 곳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 외부로 향하지 못하고 비전 제시하지 못하고
진취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능동버튼 누르지 못하고 식구들이나 패게 된다.
못난 스스로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
가장 만만한 약자나 괴롭히게 된다.
섬에 갇혀 각자 윌슨하고나 대화하게 된다.
옆집에서 반인륜적 범죄가 일어나도 남의 가정사라고 모른척하는 자신 정당화하게 된다.
이웃나라에서 침략전쟁 일어나도 자국 이익만을 계산할 뿐 인간과 문명과 지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 '피해국이 도발했기 때문이다' 말만 반복하게 된다.
전자의 전제는 '명백히 가해자의 잘못이지만'이다. 후자의 전제는 '약한 주제에 힘의 논리에 순응하지 않고'이다.
세상에 약자가 가만히 있다고 때리지 않는 강자 본 적 있는가?
미국이 나서고 프랑스가 장단 맞추고 촘스키*가 '추하게' 뚜쟁이 노릇한다고 해서 대충 좋게 좋게 다 끝날 것 같은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아직도
독립시켜주지 않은 것 우크라이나는 제대로 독립해서 진짜 나라다운 나라 되고 싶은 것
독립운동에 피 흘리는 건 당연한 일
어쭙잖은 도발이 비극의 행로가 된 것
사실은 두 쪽 다 서구문명과 자연스럽게 도킹하고 싶은 것이다. 서구에 합류하지 못한다면 두 나라 다 고립되어 서서히 말라죽게 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 피비린내 나는 전선에는
-예전 약자였던 -강자의 능동적 자기 합리화가
대놓고 발톱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서쪽 이야기 서구문명 위에 동양 문명 있다. 기독교문명과 유교문명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그 잠재성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다.
기껏 '마스크 하지 않을 자유'찾는 기독교 문명 '공동체에 대한 의리'로 고도의 철학 보여 준
유교 문명
그중 후자가 승리한 바 있다.
각자도생과 의리 중 어느 쪽이 윗길이겠는가?
뻔하지 않은가?
지금 바람은 동쪽으로 불고 있다. 세계의 방향 대한민국이 이끌 차례다.
일본과 중국이조금씩 그 역할 하고 있다.
다음 타자는 우리다.
집안싸움 얼른 끝내고 외계에 대처하자. 마침내 웅대하게 일어서자.
그렇게 꿈에 접속하자. 다 함께 꾸는 꿈이 진짜 꿈이다.
미국도 꿈 잃은 지 오래. 트럼프는 떠났지만 트럼프적 해프닝 속에서 허우적허우적. (다시 또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 우리도 역시 희망을 잃고 헤매는 것은 아닌가? 인류가 모두 사막에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닌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촘스키는 2022년 4월 13일 급진적 매체 <커런트 어페어스>의 팟캐스트 대담에서 ‘푸틴과 소수 측근에게 출구를 열어주는 추악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핵전쟁을 피하려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양보해야 한다’고 나름의 해결법(?)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글 초고는 2022년 6월 8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