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인지 애인인지 구분할 수 없을 때다. 아직 내 사랑 고백하지 못했을 때다.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지 하지 않는지 알 수 없을 때다.
상자 안의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미처 모를 때다.
결정지어지지 않았을 때 판이 깨지지 않았을 때 에너지가 너와 나 사이 접점에 집중되었을 때!
설렘과 두려움은 같은 것
그 터질듯한 호르몬 격랑을 맨 정신으로 견디는 자가 승자
팽팽한 긴장 견디지 못하고 고백테러로 서둘러 자신의 현 끊어버리는 자
그리하여 저 20세기 결정론 강으로 훌쩍 거슬러 가버리는 자
자폭은 어쩌면 습관성일지도 모른다. 결정지어지지 않은 모호한 상태를 차마 버텨내지 못하는 것.
그러나 슬퍼하라! 결정지어졌을 때부터 관계는 죽기 시작한다
친구인지 애인인지 결정해 버리고 애인인지 배우자인지 결판내고 내편인지 아닌지 판가름하고
조급하게
잘라내고 털어내고 몸서리치고 결벽증 내세우고
적대적 공생관계 깨버릴 때 죽기 시작한다.
휴가 없을 때
비상금 없을 때
쉬는 시간 없을 때 비빌 언덕 없을 때 핑계 댈 무덤 없을 때
집 나오면 갈 데 없을 때
죽고 만다.
여분 없어서 죽고
고요해서 죽고 정지해서 죽고
너무 깨끗해서 죽고 세균, 곰팡이, 박테리아 없어서 죽는다.
장사 안 돼서 죽고 흥행 참패해서 죽고 엔트로피 증가하여 죽는다.
정치는 연애와 같고
국제관계는 사업의 그것과 통한다.
연애는 세상 모든 관계의 최종보스
사업은스트레스관리가관건
호르몬 분출 잘 컨트롤하고 세균 곰팡이 박테리아 등 식객*관리에 여유 부리며 고도의 에너지 증폭 상태 즐겨야 한다.
깨달음이란
스트레스 즐기는 힘이다.
그리하여 세상 모든 덜 떨어진 결정론자들은 양자역학 받아들일 것
고백 공격하지 말고 너와 나 사이 접점 기어이 쪼개지 말고 적대적 공생관계 파투 내지 말고
그 모든 장에서 갈라치기하지 말 것. 챔피언 바디 유지할 것!
오랫동안 만나보면 알게 된다.
연인이지만 친구일 수 있고
친구지만 사랑일 수 있다.
배우자지만 한 방향 바라보는 동지 아닐 수 있고
아내지만 바깥양반일 수 있고 남편이지만 남의 편일 수 있다.
아내와 바깥양반은 중첩 상태이고
남편인지 남의 편인지는
뚜껑 열기 전에 알 수 없다.
모든 건 뚜껑 열었을 때
즉결정적 순간에
결정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 상자 안에 고양이와 독성물질을 같이 넣어놓고 하는 방사선 감지 사고 실험을 말한다. 방사선을 감지하면 병이 깨져 독성물질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상자를 열기 전에는 고양이가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로 공존(양자중첩)하고 있다. 즉 '양자 중첩' 상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뚜껑 열기 전에는 모른다는 설명인데 이 실험은 원래 양자 역학의 불완전한 면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나자 양자 역학을 묘사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고 실험이 되어버렸지만.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상자뚜껑 열 때 결정된다'가 더 정확한 철학적 워딩이라고 할 수 있다.
*식객 :
1. 예전에 세력가의 집에 얹혀서 문객(門客) 노릇을 하던 사람. 2. 하는 일 없이 남의 집에 얹혀 밥만 얻어먹고 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