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주의는 비겁한 핑계
정치가 망하면 나라 전반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극우가 나라 좀먹는다기보다
남 사생활 파헤쳐 제 배 채우는
더러운 벌레가 문제라기보다
정치 후진성 그 자체보다
정치로는 내 삶 바꿀 수 없다는
허무와 착시와 좌절이
시나브로 나라 쓰러뜨린다.
그러나 리스크는 가산점!
인간은 비참할 때 오히려 존엄할 수 있다.
망국지경은
보다 높은 세계로 향하는 문일 수 있다.
지옥 같은 현실은
치욕 날개 삼아
죽음 딛고 날아오르라는 명령일 수 있다.
역설이다.
극한 지점이 아니라면
존재는 제 안 신성 만날 수 없다는 역설
선거철마다 선거 무용론 말하는 자
결과에 사로잡혀 원인과 과정 도외시하는 자
절망 유포하는 자야말로
인간이라는 이름에 대한 반역
세상에서 인간 하나쯤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건 세상 탓이 아니다.
예수도 석가도 무함마드도 공자도 살았던 여기
세상에는 분명 존재한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생이라는 미션 묵묵히 수행하는
허무주의나 양비론에 잠식되지 않고
역사와 문명과 진화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제 삶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목숨 따위 공중에 매달아 놓은
비극 딛고 훌쩍 날아오르는 사람
부정 통과하여 긍정에 다다른 사람
마침내 차원 점프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시간과 공간 초월하여
단 한 명이라도 그런 사람 있다는 게
희망이다.
악은 단지 선의 실패
어둠은 빛의 부재
악의 원자
어둠의 암자 따위 없다.
세계에는 오로지 빛이 있을 뿐이다.
광자가 있고,
자극적이지도 섹시하지도 않아
자주 유포되지 않는
선善이 있을 뿐이다.
방해자는 정치인 몇 명이 아니라
인간이기를 포기한 저질 매체가 아니라
언론 참칭한 쓰레기들이 아니라
우리 안 허무다.
주인이 되지 못한
우리 안 자아라는 노예
방해자 처단하고 앞으로 가자.
그게 주인이 할 일
주인의 땅엔 핑계가 살지 못한다.
‘아니라고 말하면서 나열하기 신공’ 눈치챘다면 그대가 바로 승자. 악에 섣불리 져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