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경철 Dec 01. 2022

최악의 순간도 견디는 일종의 완충제를 확보하는 것

베셀 반 데어 콜크의 ‘몸은 기억한다’ 중에서

주말 동안 혼자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서 친한 동생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몇 달 전부터 벼르던 일이었기에 이번에는 기필코 다녀오리라 마음먹고 출발 일주일 전, 아이들에게 나의 여행 계획을 말해주었다.

하룻밤 엄마가 없을 거라는 말에 둘째는 ‘그럴 수 없다며, 갈 거면 자기도 데려가라고’ 떼를 쓰며 울었다. 둘째의 반응에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최근에 성공적으로 밤잠도 분리를 했고 집에 있을 때에도 언니랑 놀기 바빠서 나를 잘 찾지도 않았기에 둘째의 격한 반응은 복병을 만난 기분이었다. 첫째의 반응도 허를 찔렀다. 주저주저하며 ‘어쩐지 좀 기대가 돼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회사에서 팀장이나 처장님이 안 계실 때의 기분인 건가.’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 후로부터 나는 둘째에게는 엄마 없이도 잘할 수 있는 나이임을 강조하고, 첫째에게는 해야 될 것을 다 하고 놀아야 한다며 거듭 말하며 정신교육에 돌입했다. 출발하는 날 기차역에서 첫째는 쿨하게, 둘째는 조금은 애틋하게 잘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문제는 그날 밤이었다. 저녁 9시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둘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둘째는 영상통화를 원했다. 영상이 뜨자마자 둘째의 크게 벌어진 입과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보였다.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엄마, 거기가 어디예요? 지금 오면 안돼요? 너무 보고 싶어요. 엉엉….’


다음날 집에 가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었다. 둘째는 계속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고 급기야 다음날은 거실에 있던 가족사진을 꺼내서 내 얼굴을 만지고 뽀뽀하면서 보고 싶다며 한참을 사진을 놓지 못했다고 했다. 둘째에게는 엄마 없이 지내는 밤이 처음이었기에 그렇게나 힘들었을까.


다시 만난 둘째를 안고 을 비비며 뽀뽀를 해 주니 둘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웃는다. 그리고 자신의 볼을 나에게 더 들이댄다. 뽀뽀를 더 하라는 말이다.   

   


베셀 반 데어 콜크의 ‘몸은 기억한다’ 중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 등장하자마자 크게 울부짖는 것으로 우리의 존재를 알린다. 등장 즉시 누군가 우리에게 집중하며 씻겨 주고 담요로 꽁꽁 싸 주고 배 속도 든든하게 채워 준다. 그중에 가장 좋은 건 엄마가 배나 가슴팍에 올려놓고 살과 살이 맞닿는 달콤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줄 때다. 인간은 지극히 사회적인 존재이고, 우리의 삶은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프랑스의 위대한 정신의학자 피에르 자네는 이를 다음과 같이 멋지게 표현했다. “모든 인생은 한 편의 예술이고, 얻을 수 있는 조각을 다 조합해야 완성된다.”

성장하면서 우리는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점차 배워 가지만, 자기 관리를 맨 처음 배우는 건 바로 우리가 돌봄을 ‘받는’ 방식을 통해서다. 자기 통제 기술을 습득하는 수준은 생애 초기에 양육자와 얼마나 조화롭게 상호 작용했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부모가 안락함과 힘을 충분히 제공해 준 아이들은 평생 그 효과를 누린다. 즉 운명이 건넬 수 있는 최악의 순간도 견디는 일종의 완충제를 확보하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열심히 책을 읽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