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세폴베다 장편소설/ 정창 옮김 / 출판사 열린책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문명을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대한 의심과 함께 발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 있다. 1949년 칠레에서 태어난 환경운동가 루이스 세폴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이다.
문명사회에서 살다가 아마존 밀림으로 들어가서 원주민과 살며 사냥꾼이 된 노인과 문명의 혜택을 받은 소위 배운 사람이자 도시 사람인 읍장은 삶의 양식과 가치 등 모든 면에서 대조된다.
바나나껍질을 이어 만든 초라한 오두막에 사는 노인은 배가 고프면 물고기나 새우를 잡아먹고 나머지 시간은 책을 읽으며 보낸다. 노인은 ‘연인들이 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만 결국은 해피 엔드로 끝나는 연애소설’만을 읽는다. 소설의 대목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기도 한 노인의 글을 읽는 모습은 그의 삶이 얼마나 맑고 풍성한지, 그의 사고와 지혜가 깊이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글을 읽을 줄은 알아도 쓸 줄은 몰랐다...(중략)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 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중략)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좌천되어 아마존강 유역에 온 읍장은 술을 마시거나 부당한 세금을 걷는 것이 일이다. 엘 이딜리오의 유일한 공무원인 뚱보 읍장은 연신 땀을 흘리고 손수건을 쥐어짜는 바람에 증기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소위 배웠다는 그는 호기심이라고는 없으며, 안다고는 하지만 어떤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읍장의 모습은 재러드 다이몬드의 ‘총, 균, 쇠’의 다음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뉴기니인들과 처음으로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그들이 평균적인 유럽인이나 미국인보다 지능이 높고, 빈틈없고, 표현력도 풍부하고, 주변의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고 느꼈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흔히 두뇌의 기능을 나타낸다고 판단되는 일, 이를테면 낯선 곳에 가서도 그곳의 전체 모습을 금방 파악하는 능력 등에서 그들은 서구인들보다 상당히 능숙해 보인다."
노인의 집과 노인의 모습은 초라하지만 그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바라는 모습일 것이다. 자유로운 삶, 얽매이지 않은 삶,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노동하고 누리는 삶.
책은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는 과연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누린다고 생각하는 것, 발전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조너선 컬러는 ‘문학이론’에서 문학을 우리가 독서에 바친 노력이 결국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기대하도록 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제도적 이름표라고 했다. 그리고 문학의 다양한 양상들은 독자들이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출발하여 불확실한 것을 탐문하게끔 하면서, 단도직입적으로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라고 묻지 않게끔 한다고 말했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읽은 후 가치가 있었음을 분명히 느끼게 함과 동시에 당연히 여겨졌던 것들에 대한 탐문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