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에 운동 삼아 산책길을 걷다 보면 연두색 조끼를 입은 노인들을 만나게 된다. 큰 비닐봉지와 옛날에 넝마주이들이 쓰던 그런 커다란 집게를 들었다. 혼자는 아니고 두 명 혹은 그 이상이다. 쓰레기를 주워 봉지에 넣으며 앞으로 가면 일정 거리 앞에 작은 트럭이 기다린다. 모두 거기에다 싣는다.
노인을 위한 일자리다. 내가 젊었을 때도 이런 성질의 일자리는 더러 있었다. 그렇다면 역사가 엄청 길고 깊은 단기 일자리인 셈이다. 이런 일은 꾸준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필요하면 약방의 감초처럼 꺼내 쓰는 하루살이 제도다.
코로나 초기에는 엄청 많은 사람이 쓰레기 말고도 버스 정류장에서 안내까지 했었다.
내 젊었을 때는 이걸 ‘취로사업( 就勞事業)’이라 했다. 지금은 뭐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그때 우리는 “취로 사업하면서 땀 흘리면, 그 밑으로 삼대가 빌어먹는다”라는 농담을 했다.
일을 시키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 그 일에 관한 생각이 그랬다는 것이다.
감독하는 사람은 지금도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일자리가 타당한가에 대한 내 의견은 없다. 앞으로 관심을 가질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이건 정말 기막힌 국가 정책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 차라리 제비뽑기해서 거저 주는 것이 번거롭지 않아서 좋을 것 같다.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사전을 찾아보니, 긍휼(矜恤)이란 단어가 보인다. 그 뜻은,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준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비난하자는 의도는 없다. 내 느낌에 충실한 그런 말을 찾았을 뿐이다.
들어서 또는 입 밖으로 뱉어서 마음 편한 말이 아닌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