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가 봐

by 임진채

머리가 둔하면 수족(手足)이 고생한다 했다. 알량한 글을 쓰겠다고 와플 대학이라는 커피숍에 와서 노트북을 세팅하다, 지갑을 안 가지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원에게, 오늘 하루만 커피를 안 마시면 안 되겠냐고 양해를 구할 상황이 아니다. 남의 영업점에 와서 해서는 안 될 소리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도리 없이 사무실에 다시 가서 지갑을 가지고 왔다. 엎디면 코 닿을 거리라지만 내용 없이 같은 길을 왕복하는 건 기분이 안 좋다.

이곳의 커피가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오늘은 그중에서도 최악이라는 느낌이다.

맛이라는 객관적인 사실도 처한 환경에 따라 너무 쉽게 달라진다. 입이라는 감각기관도 감정이라는 주관에 의해 그 기능이 아주 쉽게 변하는 것은 합리적인 건 아니다. 그렇다면 내 몸 중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기관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내가 잊고 있었는데, 오늘이 일요일이다. 일요일은 공일(空日)로 인식하는 내 지능으로는 내가 집에 빈둥거리지 못하고 다른 곳에 있으면 그날은 공일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 한계를 또 확인하는 순간이다. 나는 지금 업무 중 짬을 내서 이곳에 앉아 있다고 생각했다.

지갑을 두고 다니거나, 기분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거나, 무슨 요일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다 제일 위층에 있는 머리가 하는 짓이다. 그게 성치 않으면 내 근본이 달라 보일 수 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봄이 되는데 꾀죄죄한 이 몰골로 밀려올 새바람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 강산에는 일정 나이만 넘어서면 건강하고는 상관없이 강제로 퇴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근데,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몇 년 전에 이 나라에 고려장(高麗葬)이 폐지되었지?

그게 없어진 오늘에 내가 살게 된 행운에 어디를 특정하지 않고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고려장이라는 말에 금방 장사익 씨의 노래 ‘꽃 구경’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어머니를 꽃구경 가자고 등에 업고 고려장 하러 가는 아들의 탄식을 읊은 내용의 노래다. 가장 장시익 다운 노래라고 생각했었다. 그 노래의 압권은 등에 업혀 가는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돌아갈 아들이 길을 잃지 않게 하려고 나뭇잎을 꺾어서 일정 간격으로 뿌리고 있었다는 대목이다.

여기까지 타자하고, 실내가 왜 이리 소란하나 싶어서 살폈더니 제법 많은 사람이 실내에 그득하다. 단체 손님이 두어 팀 있는 모양이다. 날이 풀린 일요일이어서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인 모양이다.


무심코 중얼거렸다. “봄이 오는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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