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形而上學)

by 임진채

한창 사진동호회에서 촬영 여행을 다닐 때였다. 전북 고창읍성을 간 날이다. 보통 전날 오후에 이른 저녁을 먹고 동대문 운동장(지금은 없어졌다) 앞에 집결하여 전세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 정해진 방식이다. 밤새도록 타고 가면 새벽쯤에는 목적지에 도착하고 해가 솟기 직전부터 촬영을 시작한다.


새벽 촬영을 마치고 아침 식사 직전에 자유 시간이 주어져 동네를 돌아다니며 찍을 거리를 찾던 중 뱃속에서 신호가 와 무심코 아무 농가에 들어갔다. 작은 것이면 좀 으슥한 골목에서 인적을 살피다가, 냉큼 처리하는 게 보통인데 이건 규모가 다른 것이라 정식 공간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원래 시골 태생이어서 시골집의 구조에 익숙하다.

가까운 집에 들어가서 제집처럼 변소에 들어가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안방에서 문을 열고 마당 쪽을 바라보고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오라고 손짓하신다. 별생각 없이 마당을 가로질러 안방 마루 밑에 서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바라보았다. 이가 하나도 없는 입을 움찔거리며 천천히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 다시는 오지 마!”


감정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음성이어서 그 내용을 새겨듣지 못하고, “예?” 했더니, 그냥 손을 들어서 가라는 시늉을 하신다.


거역할 수 없는 힘 같은 것을 느꼈다.

시골 인심이, 아무리 낯선 객이라 할지라도 거창한 수세식 화장실이 아닌 측간(廁間)을 좀 사용하기로서니 그걸 탓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할머니의 모습이 노여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고, 묘한 아우라(aura) 같은 것이 느껴져 순간적으로 숙연한 느낌이었다.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또 가라는 손짓을 하신다.


엉겁결에 쫓겨나 골목길을 나오는 내 머리에 느닷없이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러고는 깜짝 놀랐다. 이 일은 ‘형이상학’하고는 아무런 인과관계(因果關係)가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내가 순간적으로 어떻게 된 거 아냐? 신기(神氣)가 있는 할머니의 위용에 눌려 오금을 못 편 것 같다!



이젠 세월이 흘러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나는 아직 ‘형이상학’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그 할머니 얼굴이 어른거린다.

그리곤 다시 흠칫 놀란다.

도저히 서로 얽힐 이유가 없는 일이, 그 긴 세월을 끊이지 않은 연(緣)으로 묶여 지속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걸 알 방법은 없을까?



2023.06.10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금, 뭐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