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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Aug 14. 2023

내가 우울한 이유

요즘은 글을 쓰는 것이 갈수록 어렵다. 이렇게 말하면 예전에는 아주 잘 썼던 것 같지만 그건 아니고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았었다는 뜻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때는 이도 저도 아니어서 용감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암담함은 능력의 둔화에 이어서 눈이라는 육신하고 함께 어우러진 일격이어서 사람을 더 우울하게 한다. 눈이 아파서 책을 읽을 수도 없고 특히 모니터를 보는 것이 참담한 고통으로 작용하는 형편이다. 

    

눈이 아프면 눈을 사용하지 않거나 적어도 사용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노력을 거의 못 하고 있다. 내가 내거는 변명은, 나는 아직 읽어야 할 것이 많고, 아직은 소일의 방법을 눈으로 보는 것밖에 몰라서 그런다는 것이다. 그런 턱도 없는 허울뿐인 변명이 옳은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좀 더 솔직하게 내 안을 들여다보자.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먹고 사는 것하고 직결된 것이 아니고 몸이 안 좋다면 어렵게 생각할 일 없이 그냥 관둬버리면 된다. 그러나 나 같이 나이를 먹은 사람은, 생계유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일에서 쫓겨난 상태이기에 그 글을 쓴다는 게 거의 유일한 소일거리라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달리 말하면, 아파트 경로당에 가서 허허롭게 고스톱이라도 칠 변죽이 없는 성격인 나는 그냥 대범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지금 밖에는 태풍 카눈의 영향인지 아침부터 꾸준하게 비가 내리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람이 아직은 조용하다는 점이다. 남쪽에는 태풍이 이미 상륙했고 서서히 위로 치닫는다는 뉴스가 계속 뜬다. 날이 이러면 산책로를 걷다가 아픈 허리를 핑계로 벤치에 앉아 쉬는 짓도 할 수 없다. 이렇게 해서 본의하고는 상관없이 소일거리 하나가 허망하게 사라진다.

      

누구고 일상에서 약간이라도 어긋나면 생활의 리듬은 깨어진다. 이런 일이 쌓이면 남모르는 피로감이 축적되는 것도 당연지사다. 이런 일은 몸이나 마음에 하등의 득이 안 된다. 결국 늙고 낡은이는 묘한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마음의 병으로 바뀌기에 충분할 정도로·····.   

  

나를 무척 아끼시던 할머니는 항상 자신이 빨리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다 육십을 갓 넘긴 연세에 떠나셨다. 죽음이 소원하는 데로 이뤄지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할머니보다 15년을 더 살고 있다. 할머니처럼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지만, 요즘은 내 종착점을 찍는 연습을 하고 있다. 몸이나 마음이 평안하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밖에는 끈질기게 비가 내리고 있다. 이런 외부 환경은 이제 정말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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