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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Oct 25. 2023

개판

아침에 산책이나 운동하러 나오는 분 중 상당수가 개를 끌고 나온다. 반면에, 감히 끌지는 못하고 공손하게 모시고 나온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문제는 끌려 나오든 모셔져서 나오던 그 당사자인 개의 입장을 알아볼 방법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눈치 학적 관점에서는 개 팔자가 상팔자가 된 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그걸 다른 의미로 말하면 개를 개 패듯 패는 사람은 요즘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개를 안 좋아한다. 그 이유는 그냥 참담하다. 

내 어느 유년 시절에 개는 내 상위 계층이었다.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먹거리에서 그랬다는 뜻이다. 나는 굶기를 심심찮게 하던 아이였다. 설마 개밥을 뺏어 먹고 싶어 한 적이야 있었겠냐만 다음 끼니를 장담할 수 있는 건 개에 비해 확실하게 뒤졌었다.

그래서 현재 내 휘하에 열두 명의 식솔 중에 누구도 개를 키우지 못하게 하고 있다. 치졸한 열등의식이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어느 티브이 프로에 나와서 물었었다. 개 스물두 마리가 편을 갈라서 축구 시합을 하면 그 경기를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고·····. 

정답은 ‘개판’이라고 했다. 

나는 상당한 시간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날카로운 은유라고 생각한 것이다.  

    

개만도 못했던 내 이력을 내 세 명이나 되는 아들은 모른다. 그게 무에 큰 자랑이라고 입에 담았겠냐. 이 글을 읽으신 분들도 고개 두어 번 주억거리고 금방 잊어주셨으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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