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인에 관한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 나 자신이 노인이기 때문이다. 가슴에 맺힌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사람이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 잘 모른다는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노인은 처음으로 하는 짓이어서 잘 모른다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렇다. 제도적인 건 아는 게 없다. 정부가 해주는 것은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것뿐이라 알고 있다. 그 외에는 ‘노약자’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 이상은 주지도 않겠지만 바라서는 우리만 서글퍼질 것이라는 점은 안다.
가능하면 폭넓게 쓰고 싶지만, 형식에 구애받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 글의 궁극(窮極)은 대책보다는 실제적 사실을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늙은이가 누리는 제도적 수혜는 겨우 지하철이 공짜인데, 적자 예산 이야기만 나오면 죽는소리가 앞을 막고 노인의 규정을 65세에서 70세로 올려야 한다는 식으로 난리니 할 말이 있어도 안 하는 게 낫다.
지금 노인이 된 우리는 가운데 낀 세대가 맞다. 우리가 어렸을 때 혹은 젊었을 때는 사회적 관념이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엄연했다. 그 제도가 좋다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리 어른을 대접했다는 뜻이다. 지금의 늙은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잉여 인간’이다. 우리가 젊었을 때 부모를 모시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자식에게 의탁해서는 안 된다는 게 세태(世態)이다.
여러분은 노후 대책이 서 있는가?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내 주위에는 나를 포함해서 그런 사람이 거의 없다. 전쟁 전후에 태어났고 그래서 세끼 밥 굶지 않으려 아등바등했다. 그 유산을 자식에게 상속할 수 없어 빚을 내서 자식들 교육에 총력을 쏟았다.
우리가 불행했다는 말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거대 담론이 격에 맞는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같이 평범 그 밑에서 그렇고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니, 두런두런 같이 넋두리라도 늘어놓고,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다.
누구에겐가 속내를 털어놓고 난 다음에 막걸리 한 사발에 취해 잠이 들면 아침에 일어나기 수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식들 더러 들으라는 말도 아니다. 같이 살아온 낀 세대들끼리 둘러앉아 안주 접시 곁에 푸념 한 접시를 올리자는 것뿐이다.
그런 내 이야기를 읽고, 응답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댓글로 적어주시면, 그 이야기를 내가 다시 써서 올릴 것을 약속한다.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푸는 푸닥거리라고 생각하고 작은 자리를 벌렸으면 하는 것뿐이다.
그런 짓을 우리는 간단하게 ‘떼창’이라고 한다. 떼창의 사전적 의미는 ‘떼를 지어 노래를 부름, 또는 그런 노래’라고 나와 있다. 그래, 떼창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혼자 부르기에는 등이 시리다.
아주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원래 글솜씨가 별로였는데 쉬고 나니 더 낯설다.
네이버 블로그도 같이 쉬고 있었는데, 가능하다면 같은 내용의 글일지라도 두 곳에 함께 올릴 생각이다. 일타쌍피를 노리는 꼼수다.
늙은이의 글이 주목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 처지에서는 경로당 구석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물개박수라도 받을 수 있다면 영광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