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업이야기 Part3
L사에 합격한 이후에 S사의 면접의 기회가 찾아왔다
L전자의 합격 편지를 받고 난 후부터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잠을 편안히 잘 수가 있었다. 한국에서의 대학생활,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한 이유가 사실 취업을 잘 하기 위해서가 가장 큰 목표였는데 그 기나긴 시간 동안의 목표가 이제 이루어진 것이다(물론 미국에서의 취업도 있었지만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너무 컸고 실제로 실패한 취업으로 제외한다)
아직 L사의 신입사원 교육까지는 한 달여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고, 나는 그 한 달 동안을 다시 오지 않을 행복한 시간으로 생각했고 내가 즐길 수 있는 건 다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S사의 공채가 시작되었고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가장 잘나가는 S사의 계열사 지원을 하게 되었다. 돼도 그만 안돼도 그만이라는 자신감을 가져서인지, 나는 S사의 서류 합격 소식을 받았고 곧 SAT 시험 일정을 보내주었다.
원래 SAT는 S사에서 학교를 통째로 빌려서 토익 시업 치듯이 전체 지원자를 한데 모아서 치르게 하는 반면 유학생들은 따로 모아서 소규모로 SAT을 치르게 하였다. 그리고 유학생들에게는 국어영역(?), 상식 영역(?)이 없이 수리 능력 부분만 시험을 보았다. 마치 유학생들은 한국어를 모른다는 가정하에 시험을 치르게 하려는 방식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당시 S사와 L 사 모두 해외 유학생들을 꼭 채용하겠다는 내부 정책이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유학생들이 쉽게 합격할 수 있도록 SAT도 간소하게 해주고 L사와 같이 특별 관리하여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는 것이었다. 아마 그게 그 당시에 해외 유학생에 대한 프리미엄으로 보였다. (지금은 해외 유학생이 그 정도 대우를 받지 못할 것이다. 해외 MBA 등 유학생들이 국내 졸업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으로 거품이 많이 빠졌기 때문이다.. 사실이기도 하다)
여하튼 그렇게 SAT 시험을 마치고 원래는 SAT에 합격한 사람에게만 면접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해외 유학생들에게는 바로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 당시 S사의 면접 방식은 꽤 까다로웠는데, 기본적인 실무자 면접은 주제를 하나 주고 거기에 대해 본인이 프레젠테이션 하는 방식과 토론 면접으로 한주제에 대해 찬반으로 나누어 면접자들끼리 토의하는 방식이었다.
첫째 실무자 면접의 주제는 S사의 핸드폰의 앞으로 채택했으면 하는 모델은 어떤 것이 있을까 였고, 나는 현재 핸드폰의 스펙(메모리, 카메라 등)의 스펙을 고객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조립할 수 있는 구글폰과 같은 형태의 핸드폰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냈던 거 같다.
둘째 토론 면접에서는 "L사가 S사를 모바일 분야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였고 이것에 대해 할 수 있다 vs 할 수 없다로 면접자들을 나누어서 토의하도록 하였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편에서 주장을 펼쳤고 L사의 2등 이미지는 하나의 킬러상 품(초콜릿폰)과 같은 것으로 충분히 뒤집을 수 있고 브랜드명도 사이언? 폰이 아닌 리네이밍을 통한 고급화 브랜드명을 만들어 출시하면 통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토론을 주제하던 같은 조의 면접자가 중심을 잘 잡고 서로 잘 소통하게끔 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훌륭히 해냈기 때문에 우리의 토론 시간은 나름 꽤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토론면접에서 큰 점수를 딸 수 있다고 생각이 됐고 합격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관들의 반응이 좋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S사의 면접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사실 합격한 L사의 면접 때보다 훨씬 면접을 잘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의견이 면접관들에게 잘 어필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이미 타사에 합격을 한 상태여서 전혀 떨지 않고 면접에 임할 수 있었다는 것이 면접을 잘 마친 이유였기도 했다.
S사의 면접을 마치고 1주 후에 나는 L사의 한 달짜리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하루하루 L사의 조직원으로 개조되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