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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칭맘 그레이스 Mar 19. 2023

사지육신 멀쩡한데 왜 일을 안 해요?

중년, 사랑이 꽃피는 계절

항상 궁금했는데, 언니는 사지육신 멀쩡한데 왜 일을 안 해요?


내가 살면서 들어온 가장 충격적인 말 중의 하나다. 그러게? 나는 왜 사지육신이 멀쩡한데도 일을 하지 않는 걸까? 이 느닷없고 공격적인(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그 순간에도, 지금도) 질문을 받은 이후 줄곧 나는 생각한다. 나는 사지육신이 멀쩡한데 왜 일을 하지 않는 걸까? 

오랜 생각 끝에 현재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일을 골라하는 것뿐이다.


나는 신념, 철학, 가치관, 세계관 뭐 이런 것들이 중요한 사람이다. 한가하고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러우나 사실이 그렇다, 난 내 신념에 따라 일을 골라한다. 신념을 지키며 사는 게 많이 중요하다 보니 돈, 명예, 지위를 얻는 것보다 신념을 잃지 않는 게 항상 우선시됐던 것 같다. 물론 지금 당장 아이들 입에 밥이 못 들어간다면야 나 역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겠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런 상황은 아니다 보니 이제껏 유난스러운 신념을 맘껏 누리며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아닌 신념을 우선으로 사는 모양새 누군가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 있다.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내 선택에 지지를 보이는 이들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사는 방식을 의심과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들 보기에 난, 능력과 재능은 있으나 그것들을 한껏 펼치며 살지 못하는 안타깝고 안쓰러운 부류의 사람이다. 물론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보내는 걱정어린 마음들인 것을 잘 알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감사하지만 나의 선택과 삶의 방식을 지지받고 싶은 마음이 실은 더 크다. 


육아를 마치고 뒤늦게 직업세계에 빼꼼 얼굴을 내민 50대 아줌마가, 그것도 신념에 따라 일을 골라하다 보니 일자리를 얻기는 쉽지 않다. 신념이 확고한 만큼이나 현실은 냉혹 그 자체. 현재 내 수입으로는 용돈벌이조차 안되고, 한가로움이 마치 팔아치우지 못해 구석에 처박힌 짐짝처럼 부담스러울 때도 많다. 사회에 자그마한 도움이 되겠다는 선한 뜻열정 어린 의지, 전문성경험치를 더한 연륜까지 장착했으니 내가 마음만 먹어주면 일자리를 얻는 건 문제도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얼마나 순진하고 오만한 믿음이었는가를 깨닫는 데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급하고 강한 변화의 바람이 정신없이 몰아치는 대한민국 사회가 20년 넘게 직업세계와 등지다시피 살아온 쉰 넘은 중년의 아줌마를 기다리고 있었을 리 없었을 테니까...


결혼 후 두 아이를 출산하고 아이들이 모두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난 전업주부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수입은 없었지만 두 아이의 양육과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을 경쟁적으로 학원에 등록시키는 사회 분위기와 선을 긋고, 학원의존도를 최소화하며 내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코칭했다. 주요 과목에서부터 독서지도, 글쓰기, 예체능 교육까지를 내가 다 담당했다. 내가 학원을 멀리한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은데 학원시스템, 학원의 교육방식과 내용, 학원이 지향하는 바, 학원교육의 목적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내 교육철학에 부합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양육과 교육 전반을 혼자 감당하는 것은 늘 힘에 부쳤고 분주했으며 큰 부담이었다. 아들이 꼬맹이였을 때 어느 날 내가 자주 점심을 건너뛴다는 걸 알아채고는 집에 쌀이 부족해서 엄마가 동생과 자기에게만 밥을 주고 정작 엄마는 끼니를 거르는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며 뒤늦게 토로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땐 그랬다. 끼니를 거를 만큼 정신없이 바빴으니까...

아이들 교육을 직접 담당하며 육아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나는 틈틈이 지역사회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코칭세미나', '성품학교'를 열었고 '인문독서모임'을 운영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학부모 상담을 했다. 고정수입이 없었을 뿐이지 어떤 직업인 보다 전문적으로 쉴 틈 없이 보람 있게 일하며 살았다고 자부한다. 내 선택과 살아온 삶에 대한 한치의 우월감도 없지만 그렇다고 후회나 열등의식도 없다. 난 자녀양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의지가 있었고 그것에 따라 일(육아)을 선택했고 선택한 대로 열심히 내 일을 잘 해냈을 뿐이다. 동료 한 명 없는 '혼자'의 외로움을 견뎌야 했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다. 내 선택을 지켜보는 의문에 찬 눈초리들을 참아내며 자기 확신에 의존해 살아야 했다. 친정아버지조차 육아에만 매달리는 나에 대해 늘 불만이 많으셨으니까.... 대학원까지 나와 왜 집에서 저러고 있나 하는 눈총을...


내가 전업주부로 산 것에 대한 설명, 직업인으로 살았다면 필요 없었을, 변명 같은 설명이 굳이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어찌 됐든 전업주부는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 자체가 없다 보니 무능, 무기력해 보이기 십상이다.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낸 것으로 노고를 인정받는 한국의 전업주부는, 본인이 얼마나 유능하고 열심히 일했는지에 대해 달리 평가받을 기회나 루트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업주부가 긍정적인 자아상효능감을 갖기는 쉽지 않고,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자본과도 생산성과도 무관한 일을 하게 되니 쪼그라드는 자존감의 불쾌감 마저 겪게 된다. "너는 어떤 직업인 못지않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 스스로에게 걸어보는 주문이 항상 힘을 발휘할 리도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 사회 혹은 가족의 인정과 공감이 절실한 이유다.  

육아를 선택한 것은, 내가 월급 받을 직업이나 회사를 선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업을 하나 일궈내는 것 이상으로 한 생명을 제대로 잘 키워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믿었고, 육아를 마치고 나면 나의 전문성과 경험을 살려 사회에 헌신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는 낭만적인 믿음 또한 충만했다. 그러니 아이들을 내가 직접 양육하는 일을,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대체 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걸까?


난 MBTI 성격유형들 중 "정의로운 사회운동가"에 속한다. 사회정의와 분배에 관심이 많고, 내가 하는 일이 사회와 공동체에 선한 영향을 끼쳐 발전적 방향으로의 변화(그 변화가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하며 꿈꾼다. 돈을 많이 벌고 안 벌고는 그다음 문제다. 따라서 내가 일을 고를 때 기준이 되는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나와 더불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이다. 내가 하는 일이 궁극적으로는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거나 사회를 더 불공평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끔찍하다. 표면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지갑을 터는 일, 안 그래도 삶이 고단한 이들에게 박탈감을 더하는 일,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는 일, 심신을 고갈시키는 일 등으로 내 통장을 불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돈을 얼마 버느냐, 어떤 사회적 지위가 약속되느냐 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일의 결과가 낳는 효과이다. 


착취 기반의 직업들을 선호하지 않을 뿐이다


태어나 보니 자본주의 사회였다.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를 살아본 적이 없다. 한때는 마치 내 몸에 꼭 맞는 옷처럼 편안하고 안락하기만 했던 자본주의! 의학 분업이 있기 전, 약국이 꽤 잘 되던 시절에 약사셨던 부모님 덕분에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나의 든든한 요새로, 욕망을 채워주고 안전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요술램프와 다르지 않았으니 난 자본주의의 수혜자로 그 어떠한 저항 없이 잘 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결혼 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자본주의의 폐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참 위대하다. 엄마로 최선을 다해 산 것뿐인데 성장과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던 걸 보면...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늘에서 힘겹게 사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착취 기반의 직업들, 자본주의를 살찌우는 직업군을 선호하지 않게 됐다. 이를테면 근로자를 착취해 부를 축적해 가는 자본가, 여러 면에서 사회적 약자인 이들의 고충을 이용해 과도한 수익을 올리는 전문직 종사자, 명품 소비와 사치를 조장하는 관련 업계 종사자, 아이들의 유년시절을 망치고 청년들을 게임의 노예로 만드는데 열일하는 게임 산업 종사자, 위험 부담이 큰 투자를 종용하는 금융관계자, 외모지상주의를 부축이는 의료인, 공포 전략을 펼치며 학생과 학부모를 생지옥으로 몰아넣는 학원관계자, 팔로워의 안녕과 행복에 일도 도움 안 되는 SNS의 인플루언서 등....

물론 순전히 편협한 내 기준일 뿐이고 단지 내가 이런 직종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아들은 현재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들이 혹시나 게임회사에 취직하게 될까 난 솔직히 걱정스럽다. 게임회사가 아무리 좋은 대우를 해 준다고 해도 난 아들의 게임회사취업을 환영하기는 힘들 것 같다. 물론 선택은 아들의 몫이고, 아들도 직업선택이 철저히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난 신념이 아니라 편견에 사로잡혀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름 견고한 편견으로 인해 내가 하고 싶은 일 - 부모교육과 홈코칭 관련 소그룹 수업 또는 강의- 는 커녕 어떤 일자리도 영영 못 얻을지 모른다. 내 경험과 전문성을 사회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와 나누고 싶은 바람이 한낱 소망으로 끝나버릴까 초조한 불안이 엄습해 오기도 한다. 내가 꿈꿔온 계산된 루트가 아니라면 또 다른 길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에 빠져 지내는 요즘, 글이나 매체를 활용하는 방법들을 고심하며 찾고 있는 중이다. 언제나처럼 열심히, 성실하게...

사지육신 멀쩡한 난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일을 골라할 뿐이다

직업적 성공의 기준과 기대치가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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