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올 여름 마당 화단에서 풀을 뽑고 있을 때였다.
어김없이 줄을 지어서 무언가를 열심히 나르는 개미들이 보였다.
종횡무진 어디론가 향하는.
겨울에 먹을 양식을 저장하려는 걸까.
나는 가만히 개미들을 지켜봤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이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딸아이는 바퀴벌레나 뱀보다 개미를 더 싫어한다.
그래서 항상 개미를 발견하면 홈**나 에프** 약을 들고 살생을 시작한다.
곧 딸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대문을 들어설 것을 생각하니
개미들이 대피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소심한 작전으로 개미의 대열을 흩어버렸다.
그런데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던 개미들은 금방 전열을
갖추고 제 길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독가스를 피해 도망가라고 신호를 준 것인데
개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꾸역꾸역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는 수 없이 그 개미 중에 몇 마리를 집어
조금 떨어져 있는 데크에 올려놓았다.
그때 딸아이가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역시나 개미들이 줄지어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또다시 발작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약을 찾았다.
곧 화단 옆은 대살육의 현장으로 변했다.
개미들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가늘고 긴 다리는 감전된 듯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렸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데크 위로 옮겨놓은 개미가 궁금해졌다.
그 개미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처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개미들은 자기들이 있던 그곳이 어떻게 얼마나
참담하게 황폐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원래 자기들이 가던 그 길과 동료들을 찾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허둥대는 개미들을 원래의 길 가까이로
다시 옮겨 주었다. 제 길을 찾아가라고.
조금만 헤매면 찾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주변에서 개미 약의 독성을 감지했는지
그토록 애타게 찾던 그 길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흠칫 놀란 눈치였다.
그러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을 갔다.
문득 도망간 개미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호기심이 발동했다.
처참한 현장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어떻게 보면 기적 같은 선물을 받은 것인데
그들이 나에 대한 보답으로 선물을 준다면 어떤 걸 줄까?
죽은 파리나 잠자리 날개를 준다면….
얼마 전 나 역시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같은 모임에 나가고 있는 지인이 손수 뜬 담요를 건네며
모임을 위해 일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렛과 베이지색이 적절히 섞인 담요는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바로 최애 담요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생각이 스멀거렸다.
‘나도 뭔가 보답해야 하는 거 아닌가?’
동시에 내가 살려 준 개미들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친구들과 지인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고
많은 선물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그때마다 선물을 받으면 뭔가 보답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웃에서 떡 한 접시를 가져와도
접시를 내려놓기 무섭게 뭐를 챙겨줘야 하나 뒤지다가
음료수를 꺼내 준 적도 있다.
나를 위해 떡을 담고 집까지 걸음 해 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마음을 고작 음료수 한 병과 맞바꾼 것이다.
그 주는 마음을 순수하게 받았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더 많은 감사를 누렸을 것이고
사소한 것을 통해서도 우리의 마음은 충분히 데워질 수 있음을 알아챘을텐데.
마음을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환산하려고 하지 않는 연습,
무더운 여름 오후 개미들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