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누군가의 회복을 지켜보는 자리에서 배운 것들

by mjbooks

회복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회복을 자주 놓쳤다.

눈에 띄는 변화,

분명한 호전,

확실한 결과를 기준으로 아이를 바라볼 때 회복은 늘 뒤로 밀려났다.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하루는 그저 무사히 지나간 날로 쉽게 정리되곤 했다.

하지만 교실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은 대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조용히 일어난다.

어느 날 한 아이가 하루 종일 불안해했다.

몸은 계속 움직였고, 시선은 머물지 못했고, 작은 소리에도 쉽게 흔들렸다.

나는 그 아이를 지켜보며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사이에서 하루를 보냈다.

수업이 끝날 무렵, 하루 종일 자리를 벗어나려던 그 아이가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에 가만히 돌아가 앉았다.

누군가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장면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 아이는 그날, 교실을 떠나지 않고 자기 자리에 머물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회복이라는 말이 늘 앞으로 나아가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때로 회복은 더 무너지지 않는 하루,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을.

문제 행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완전히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로, 자기 몸으로, 자기 리듬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회복을 지켜보는 일은 기다림이라는 것도 함께 배웠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기다림은 교사를 가장 빠르게 소진 시키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애쓰고 있다는 감각이 없을 때, 성과로 남지 않을 때, 기다림은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래도 나는 기적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방향을 보기로 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덜 흔들렸는지.

조금 덜 다쳤는지.

조금 더 그 자리에 머물 수 있었는지.

이 질문들은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사람을 조금씩 다시 세운다.


회복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는 것을 나는 교실에서 배웠다.

누군가의 회복을 지켜보는 자리에서 나는 자주 나 자신을 본다.

나 역시 매일 완벽하지 않고, 자주 흔들리고, 자주 무너지고, 그리고 자주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회복을 가르치지 않는다.

회복을 함께 통과하려 한다.

앞서 끌어당기지 않고, 뒤에서 밀어붙이지 않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조금 느린 속도로 그 자리에 서 있으려 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교사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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