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난 아이
엄마는 어릴 때 나쁜 아이였어
“으아아 앙!! 문 열어 주세요!!”
같은 아파트에 살던 엄마들이 누구네 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어떤 엄마들은 혼자 왔고, 어떤 엄마들은 아이를 데리고 왔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그 집에 갔다. 나는 배가 별로 고프지도 않았고, 잘 모르는 어른들이 있는 자리라 더욱 입맛이 떨어졌으며, 별로 먹고 싶은 음식도 없었다.
사실 나는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입맛이 너무 까다로운 아이였다.
갓 지은 밥은 뜨거워서 싫었고, 식은 밥은 찹찹해서 싫었다. 살짝 따뜻하지만 식지 않은 상태의 밥만 좋았다.
계란 프라이를 너무 바싹 익히면 딱딱해져서 싫었고, 살짝 익혀 노른자와 흰자가 흐물거리면 비위가 상했다. 촉촉하고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골고루 익지 않으면 계란 프라이를 먹지 않았다.
계란말이에는 파나 채소의 식감이 너무나 거슬렸다. 부드러운 계란 속에 뭔가 질긴 것이 들어있는 것이 기분 나빴다.
멸치는 또 어떤가. 촉촉한 멸치를 씹으면 양념이 흘러나오는 느낌이 싫었고, 밥 위에 바삭한 멸치를 얹어 먹으면 부드러운 밥 사이에서 멸치가 입속을 찔러대서 기분이 나빴다.
김치를 씹으면 혀에서 시작해서 귀 안쪽 어딘가에 불이 났다. 김치 한 조각을 먹으면 물을 몇 컵이나 마셔야 해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콩나물 무침은 질긴 밧줄 같아 목구멍에 걸릴 것 같았다.
된장국은 짜고 이상한 냄새가 나서 먹기가 힘들었다.
미역국 맛은 괜찮았지만 미역의 미끄덩거리는 식감이 싫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구이 같은 건 씹기 힘들었다.
그나마 내가 잘 먹은 것은 흰쌀밥과 조기 구이, 그리고 케첩 계란 비빔밥이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먹고 나면 질려서 또 한동안 먹지 않았다.
엄마는 아마도 그 자리에서 내가 밥을 잘 먹지 않는 애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그때 다른 엄마들은 애가 배고플 때까지 굶기라거나 간식을 먹이지 말라거나 하는 그런 조언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한 아주머니가 나를 화장실에 가두셨다. 그리고 불을 껐다.
“너 밥 잘 먹을 때까지 화장실에서 못 나올 줄 알아!”
깜깜한 화장실에서 엉엉 우는데 노란 화장실 등이 켜졌다.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 엄마가 나를 어떻게 달랬는지, 화장실에서 나와서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어떻게 집에 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를 화장실에 가둔 그 아주머니가 나더러 ‘별난 아이네’라고 한 말이 마음에 가시가 되어 박혔다. 그리고 최초로 어른에 대한 불신감과 반항심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지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를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주말마다 할아버지댁에 가면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얌전하고 신중한 언니와는 달리 나는 호기심이 많아서 궁금한 건 꼭 만져봐야 직성이 풀렸다. 실수로 깨지거나 망가뜨려도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웃으며 귀여워하셨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에게도 아이가 뭔가 궁금해할 때는 절대 혼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게다가 엄마는 <스포크의 육아전서>를 참고해서 우리를 양육하셨는데, 이 책은 아이들에게 애정과 자유를 충분히 제공하며 키워야 한다는 주제를 갖고 있다. 엄마 아빠는 내가 뭔가를 궁금해할 때마다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주셨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가 똑똑하게 큰다며 질문을 할 때마다 칭찬을 해 주셨다.
나는 유아기 시절을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엄마와 보냈다. 유치원은 7살 때에만 갔고, 유치원에 있는 시간 말고는 엄마와 늘 함께였다. 엄마는 입이 짧은 나를 위해 요리 놀이도 해주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업어주고 안아주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왜 그럴까?’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언니는 나보다 비록 한 살 많을 뿐이었지만, 너무 착해서 ‘이쁜 내 동생’이라며 늘 나에게 양보하고 챙겼다. 아빠는 퇴근하면 우리와 놀이터에 가서 그네도 태워주고, 자전거로 공원에 가서 함께 노을 구경도 하는 따뜻한 아빠였다. 이런 갈등 없는 환경 때문에 나는 7살까지 좌절을 모르고 지냈다.
이웃 아주머니 중 어떤 분들은 엄마에게 애를 별나게 키운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이가 잘못하면, 그 잘못이 어떤 잘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하게 혼내고 때려야 한다는 분들이었다. 심지어 우리 옆옆집의 오빠는 거꾸로 매달아 야구 배트로 때리기도 한다고 했다.
궁금했다. 애들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그렇게 저지르길래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혼나는지. 그리고 그렇게 무섭게 혼나서 아이들이 정말 잘못에 대해 반성하는지. 내가 궁금해서 만져보는 것을 저 아주머니들은 별나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을 버릇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 걸까? 나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어른의 나이가 되어 그때를 생각해 보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어떤 어른들에게는 기분이 상하는 일이었고, 버릇없는 일이었던 것 같다. 어린 나에게는 맛없는 음식이 나와도 맛이 있다고 이야기할 줄 알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마음에 든다고 이야기할 줄 아는 사회적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눈치가 없어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필 줄 모르는 아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