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첫째 아이의 하교 시간을 알리는 알림이다.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학교 앞 놀이터로 향한다.
첫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바로 앞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다. 작은 놀이터에는 미끄럼틀과 그네, 그리고 벤치가 몇 개 있다. 이 학교 아이들은 하교 후 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학원 차를 타고 학원에 간다.
우리 아이들은 피아노 학원을 걸어서 다니기 때문에 학원 차로 다니는 친구들보다는 놀이터에서 더 많이 놀 수 있다. 특히 첫째 아이는 병설 유치원을 다니는 둘째가 마치는 3시 반이 될 때까지 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맘껏 논다.
놀이터에는 저학년 아이들의 보호자들이 몇 와 있다. 이 보호자들은 아이들이 마치면 바로 아이를 데리고 학원으로, 집으로 간다. 스쿨존 지도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계신다. 어떤 분은 아이들이 길을 건널 때 차가 오는지 봐주시기도 하고, 아이들이 싸우면 엄한 목소리로 싸움을 말리기도 하지만, 보통은 벤치에 앉아 그분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신다.
나는 놀이터에 오면 되도록 그늘진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가방 속에 물티슈와 간단한 간식, 구급약품을 확인하고, 학교 일과가 마쳤다는 종이 울릴 때까지 벤치에서 그날의 햇빛과 바람을 느낀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교문을 나오기 시작하고 우리 아이와 아이들의 친구들도 보인다. 아이들은 내 주위에 가방을 던져 놓으며 나에게 인사를 하고 간식을 받아 간다. 그러고는 그네를 타거나 지붕이 있는 미끄럼틀에 올라가 수다를 떨거나 딱지치기나 술래잡기하며 놀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나는 책을 읽는다. 왠지 스스로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이 된 것 같고, 집에서만 읽는 것보다 분위기가 전환되어서 더 잘 읽힌다. 그런데 첫째 아이와 몇몇 친구들이 나에게 달려온다.
“엄마! 저기 그네에서 애들이 싸워.”
그네로 가보니 어떤 아이가 그네를 옆으로 거칠게 흔들고 있다. 그네에 탄 아이는 욕을 한다. 친구들의 문제가 뭔지 알아봐야겠다.
“친구야, 그렇게 흔드니까 그네에 탄 친구가 무서운가 봐. 그네 좀 멈춰줄래?”
그네를 흔드는 친구에게 부탁하자, 그 아이가 말한다.
“쟤가 계속 혼자 타요.”
“아이고, 그네가 얼른 타고 싶구나. 근데 이렇게 흔들면 너도 다치고 친구도 다치겠는걸.”
이럴 때 그네를 타고 있던 아이가 ‘너도 그네가 타고 싶었니’ 하며 얼른 양보를 해 주면 바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 그 친구는 내가 자기편을 든 줄 알고 그네를 흔든 아이에게 약 올리는 욕을 한다.
“아니, 친구야. 그네 타고 싶은 친구를 약 올리면 친구가 더 속상해질 것 같은데. 저 친구는 그네를 빨리 타고 싶은가 봐.”
“제가 그네 타는데 쟤가 그네를 흔들었어요. 쟤 나빠요.”
“나쁜 게 아니라 얼른 타고 싶어서 그런 거지. 그네 흔든 건 잘못이긴 하지만 빨리 타고 싶은 마음이 나쁜 마음은 아니긴 해. 그렇지?”
이런 얘기를 조곤조곤 나누다 보면 애들 사이의 긴장감이 느슨해진다. 그리고 표정도 좀 더 편안해진다. 누군가가 학원 차를 타러 가거나, 아니면 양보해서 문제가 스르륵 해결된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아이들은 누군가가 싸우면 나를 찾아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다.
아이들이 넘어져서 다치면 그 아이에게 달려가 구급약을 당장 꺼낸다. 알코올스왑으로 상처 주위를 닦아주고 비판텐을 반창고에 묻혀 상처에 붙여준다. 좀 많이 다친 듯싶으면 부모님께 전화도 걸어 준다.
내가 남의 아이들에게 괜히 오지랖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엄마가 놀이터에서 싸움 나면 말리잖아. 그러면 어떤 기분이 들어? 친구들은 뭐래?”
“역시 우리 엄마가 좋다는 생각이 들어. 내 친구들도 엄마가 문제 해결해 주는 게 좋대.”
“아 진짜? 다행이다!”
이렇게 놀이터에서의 시간이 쌓이니 아이들은 나를 만나면 아는 척을 해 준다. 어떤 아이는 안녕하세요, 하며 꾸벅 인사를 하고, 어떤 아이는 친구처럼 손을 흔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기분 좋게 놀이터를 떠나고 우리도 피아노 학원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늘 갈등을 겪는다. 서로 원하는 바가 달라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아이들은 스스로 깨치기 힘든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릴 때는 알기 힘든 해결방법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나도 어릴 때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어린 나는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친구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줬다. 그리고 그 죄책감은 꽤나 오랜 시간을, 내 인생의 반을 갉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