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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작북작 Oct 16. 2023

#5. 자기혐오라는 회색빛 안개

엄마는 어릴 때 나쁜 아이였어

나의 사춘기는 고등학교 때 찾아왔다. 인생에 아무 의미가 없고, 무기력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짙은 회색 안갯속에 갇혀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안개는 회색처럼 애매모호하고 무거웠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안개 앞에서 나는 늘 두려웠다. 한 발을 떼어 앞으로 나가는 것도 무서울 정도였다.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안개는 어릴 때부터의 자기혐오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나에게 바른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나쁜 아이”라고 말하거나 화를 내었다. 어른들의 대응은 나 스스로를 나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은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집에 아이스크림이 2개 있었다. 언니는 내가 먼저 고를 수 있게 양보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시작되었다. 언니 것이 더 맛있게 보였던 것이다. 나는 언니에게 묻지도 않고 언니의 아이스크림을 뺏어 먹었다.     


“엄마! 얘가 내 아이스크림 뺏어 먹어요.”      


엄마가 우리를 돌아봤을 때, 나는 한 손에는 내가 고른 아이스크림을 들고 언니의 아이스크림을 뺏어 먹고 있었다. 이 상황을 본 엄마는 “너 그러면 나쁜 아이야!”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때 엄마가 무슨 의미로 “나쁜 아이”라고 말했는지 안다. 내가 진짜 “나쁜 아이”라는 말이 아니라, 언니에게 물어보고 한 입 얻어먹든지, 아니면 빼앗아 먹는 것을 멈추라는 뜻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어린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나를 나쁜 아이라고 말하는 것에 놀라 행동을 멈추었다. 이 방법은 나의 잘못된 행동을 멈추는데 아주 효과적이어서 엄마는 이 방법을 자주 사용했다.      


이 방법은 나의 행동을 멈추게 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부작용이 아주 컸다. 나는 언제나 인정을 바라는 아이였다. 칭찬을 갈구했다. 조금이라도 혼나면 크게 혼난 것처럼 느끼는 예민한 아이였다. 그러니 일부러 나쁜 행동을 한 적도 거의 없었다. 단지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앞서서 그랬을 뿐이다. 만약 어른들이 화를 내지 않고 그 행동이 왜 나쁜지 설명해 주거나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려줬다면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면 내가 나 자신을 그렇게 싫어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나쁘다고 하는 말이 내 마음에 쌓여갔다.      


7살 겨울부터는 죄책감이 내 마음속 창고에 먼지처럼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성당에 다니고 나서는 나는 점점 더 소심해졌다. 하느님은 나의 머리카락 개수도 다 셀만큼 나에 대해 잘 알고, 나의 생각도 다 알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나쁜 생각만 해도 하느님이 다 아신다고? 그러면 어떤 반찬이 맛이 없다고 생각만 해도, 저 선물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만 해도 하느님은 나를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가? 해야 할 공부를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친구에게 아끼는 학용품을 빌려주기 싫은 마음이 들 때도 나를 나쁘다고 하시는 걸까? 심지어 매주 미사를 가지 않아도 죄라고? 나를 나쁘게 생각하는 분은 자주 보고 싶지 않은데, 안 가면 죄라니 어쩔 수 없이 주말마다 성당에 가야겠구나.     


심지어 크리스마스 캐럴에 산타 할아버지도 잠자거나 일어날 때, 짜증 내거나 장난할 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하니 절망스러웠다. 기분이 안 좋은 날에도 짜증을 내면 안 되고, 아니, 그보다 기분이 안 좋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장난치는 것도 안되고 어설프게 웃기려고 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완벽에서 어긋나는 순간마다 죄가 쌓일 것 같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못을 전혀 하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가끔씩 혼나며 커갔다. 혼나고 나면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잘못을 잊으면 나는 또 잘못을 저지를 것 같아 두려웠다. 잘못을 잊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을 방법을 그때는 몰랐다.     


지금은 안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사과를 하고, 뭐가 잘못인지 잘 모를 때엔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가 언제든 실수나 잘못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그리고 안 좋은 행동이 뭔지 파악해서 바람직한 행동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잊지 않기.


그런데 어린 나는 내가 놀 자격도 없고, 깔깔 웃을 자격도 없을 것 같았다. 호기심을 보이는 것도 남들을 귀찮게 하는 것이니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항상 망나니 같은 나 자신을 조심시키며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는 호기롭게 완벽한 하루를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이 있어도 나에게 다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하기, 친구들에게 도움 주기, 바른말 쓰기, 수업 열심히 듣기, 공부 열심히 하기, 무단횡단하지 않기, TV 보지 않기, 가요 듣지 않기, 엄마나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 하지 않기...     


특히 중학교 3학년은 내가 완벽하게 보낸 한 해였다. 그런데 이 완벽은 새로운 좌절로 이어졌다. 내가 살던 지역에는 고입 연합고사가 있어서 중학생들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 나는 친구 5명과 함께 독서실에 다녔다. 학교를 마치면 매일 독서실에 모여 50분 공부하고 10분 쉬며 밤 12시까지 함께 공부했다. 식사 시간에는 같이 맛있는 걸 사 먹고 잘 모르는 것은 서로 가르쳐 주며, 모의고사를 잘 못 본 날에는 서로 위로를 해주었다. 함께 열심히 공부한 덕인지 우리는 모두 좋은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삶의 패턴이 달라졌다. 어떤 친구는 과외를, 어떤 친구는 학원을, 어떤 친구는 다른 친구를 사귀어 다른 독서실에 다녔다. 나는 중3 때처럼 고등학교 3년을 이 친구들과 공부하며 지내고 싶었는데 우리의 모임은 흩어졌다. 좌절스러웠다.     


이 좌절감은 내 마음에 쌓였던 스스로에 대한 미움, 자기혐오와 연결되었다. 나는 어차피 다 망한 인생이야. 나는 의도하지 않아도 나쁜 아이야.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내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의 심기를 거스를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심기 불편한 표정 하나하나가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나에게 인상 쓰는 것이 아닌데도, 나는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남들에게는 내가 그들을 이기려고 애쓰는 모습으로 보일까?’ 이런 걱정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건 사춘기 호르몬이 만든 과대한 망상이었다. 그런데 그 망상을 나는 아주 굳건히 믿었다.

아주 뾰족한 가시가 있지만 남들을 찌르고 싶지 않은 고슴도치처럼 나는 극도로 예민했고 모든 것에 조심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것에 무기력해졌다. 내가 내 뜻을 갖고 살면 다른 사람들을 해칠 것 같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혐오의 안개는 검은색이 아니라 회색이었다. 나 자신이 너무 싫어 무기력한 상황에서도 내 안에는 희미한 밝은 빛이 있었다. 그 빛은 내가 나 자신을 아끼는 마음,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더 나은 삶이 앞으로 올 거라는 희망이었다. 그 빛은 유아기 때 아무 조건 없이 받았던 사랑에서 온 것이었다. 그 빛은 내가 완전히 주저앉지 못하게 나를 이끌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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