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릴 때 나쁜 아이였어.
“00 이가 너 때문에 속상해서 펑펑 울었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차와 부딪혔다. 나는 넘어지면서 기절해서 그 상황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머리뼈에 4cm 정도 금이 가는 골절상과 뇌진탕으로 입원했다. 가끔 머리가 욱신거리는 것 말고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학교에 안 가는 것도 좋았고, 눈높이 수학이 밀려있었는데 안 해도 되어서 좋았다. 엄마 아빠는 내가 읽고 싶다는 보물섬 만화책과 책을 사 오셨고, 부모님의 지인들도 맛있는 간식이며 장난감을 갖고 병문안을 와주셨다. 그리고 친구들도 병문안을 와주어서 기뻤다.
초등학교 3학년 때에는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몇몇 친구들이 나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나는 바쁜 엄마 대신 선생님의 관심을 끌려고 많이 노력하는 아이였다.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께 가서 이것저것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만 바라보며 수업을 들었다.
“자~ 오늘은 00에 대해 배울 거예요. 00은 어떤 걸까요?”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많은 아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그런데 3학년 때의 나는 ‘오직 나’만이 정답을 맞혀 선생님의 인정을 받으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손을 들고 자기가 지목되기 기다리는 순간에 정답을 말해버렸다. 모두의 선생님을 나 혼자 독차지하려는 모습, 혼자만 칭찬받으려고 하는 모습에 몇몇 친구들은 나를 미워했다. 나는 그 친구를 미워하지 않는데, 그 친구가 나를 미워한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땐 ‘내가 수업을 열심히 들어서 나를 미워한다’라고 생각해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공부를 못해야 친구들은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내가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아야 친구에게 미움받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업 시간은 재미있고 좋지만 몇몇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이 느껴져서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내가 기억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너 정말 똑똑하다. 두 번째는 너 정말 잘난 척 많이 해서 재수 없어.
근데 두 메시지 모두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뭐가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 바로잡을 수 있는지 배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때 아빠는 내가 공부를 잘해서 미움을 받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혹시 누군가가 다른 친구들도 발표를 잘해서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알려줬더라면, 친구들의 말도 잘 들어주고 존중해 주라고 알려줬더라면, 친구들의 마음도 생각해 보자고 알려줬더라면 친구들과 좀 더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그렇게 이야기해 주더라도 애정결핍 때문에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어느 날, 엄마의 제자이자 언니의 친구인 00 언니가 병문안을 왔다. 언니는 열쇠가 달린 일기장을 선물로 주었다. 열쇠 달린 일기장은 처음이라 너무 설렜는데, 열쇠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 열쇠를 넣어도 열리고 열쇠를 넣지 않아도 열렸다.
“에이~ 이게 뭐야. 이거 싸구려 아냐?”
00 언니의 얼굴이 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내 입으로 ‘싸구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웃기다고 생각하느라 00 언니의 표정을, 기분을 살피지 못했다. 언제나 똑바른 말만 쓰며 범생이처럼 살았는데 내가 ‘싸구려’라는 말도 하다니. 00 언니도 나를 웃기고 재미있는 아이라고 생각하겠지?라고 생각했다. 00 언니는 병실을 나설 때까지 부정적인 감정은 표현하지 않고 나와 좀 더 놀아주고 나갔다.
그날은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퇴원 후에 언니가 00 언니가 속상해서 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괴로운 마음이 밀려왔다. 웃기자고 ‘싸구려’라는 말을 쓴 것이 참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00 언니가 어떤 감정으로 울었는지는 모른 채, 내가 00 언니를 울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다. 어린 나는 앞으로 웃긴 단어나 강한 말을 안 쓰겠다고 다짐했다.
00 언니가 선물을 고른 정성, 늦은 밤 집에서 꽤 먼 병원에 나를 만나러 온 마음에 대한 고마움은 모른 채, 웃긴 말을 해서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라고 착각하던 어린 나를 보면, 원인이 뭔지도 잘 모르고 나는 나쁜 아이라고 자신을 미워하던 어린 나를 보면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