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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작북작 Oct 10. 2023

#3. 나쁜 아이 (1)

엄마는 어릴 때 나쁜 아이였어.

“너는 왜 이렇게 입이 가볍니?”


엄마의 매몰찬 질타가 이어졌다. 눈물이 흘렀다. 내가 정말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할까.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내가 뭘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때때로 있었다. 친구의 엄마가 사실은 새엄마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친구의 아빠가 회사 구조조정으로 퇴직해서 이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친구의 아빠가 간암으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는 엄마와 나누고 싶었지만, 엄마는 너무 바빴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봄에 동생이 태어났고 그해 겨울부터 엄마는 그룹과외를 시작하셨다. 초등 저학년 자매에, 갓난아이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일까지 시작한 것이다. 


엄마의 일과는 이랬다. 새벽에 기도하거나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새벽 미사를 다녀온다. (아마도 아침에 자신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의식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 뒤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우리를 깨워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낸다. 오전에는 동생을 돌보며 아이들을 가르칠 준비를 하거나, 엄마 삶에 활력이 될 것을 배우러 다니셨다. 그리고 하교 시간이 되면 우리 남매에게 먹을 것을 챙겨 준 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에는 엄마를 부를 수 없었다. 저녁 먹을 때가 되면 하루 수업이 끝났다. 엄마는 후다닥 저녁을 챙겨 주고는 미사를 다녀오셨다. (미사를 다녀오는 것이 엄마에게는 스스로 보듬는 힐링 시간이었던 것 같다) 미사를 다녀오고 나서는 집안일을 하고 언니와 나의 숙제를 챙기고 다음 날 등교 준비를 시키고 기절하듯 주무셨다. 

1분 1초를 아껴 사는 엄마였다. 이런 엄마에게 오늘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 무겁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하기 쉽지 않았다.


아빠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대화가 잘되지 않았다. 메로나가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아빠가 좋아하는 바밤바나 비비빅을 사 와서 섭섭했던 적이 있다. 그때 아빠는 아이스크림 사 왔는데 왜  섭섭해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대화도 그런 느낌이었다. 어떤 친구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고민이라고 이야기하면 아빠는 자세한 사정은 듣지도 않고 내가 공부를 잘해서 질투하는 거라거나, 평생 볼 사람 아니니까 신경 안 써도 된다는 식의, (아니, 매일매일 마주치는 친구를 어떻게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나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조언을 하셨다.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아빠는 뭐가 아니냐며 이해를 못 해줬다. 아빠와 대화하면 계속 내 마음을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서 짜증이 났다. 


친구의 힘든 사정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뭔가 위로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뭘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건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른인 지금은 침묵이, 마음속으로만 조용한 응원을 하는 것이 그 사람을 돕는 것인 것도 알고, 작은 선물이나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위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엔 어떻게 하는 게 친구를 위하는 것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름 고민을 해서 다른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00이네 엄마가 사실은 새엄마래. 우리 00 이에게 잘 대해주자.”

내가 말한 이야기는 소문이 되어 점점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엄마의 귀에도 들어왔고 나는 입이 가벼운 아이가 되어 혼났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나쁘다고만 하고, 내가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물어보거나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했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나쁘다고만 생각했다. 또 그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 채 자신을 자책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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