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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작북작 Oct 24. 2023

#7. 결혼이라는 탈출구

엄마는 어릴 때 나쁜 아이였어

“저랑 결혼을 전제로 만나보실래요?”


10월 어느 토요일 저녁, 연남동 어느 카레집에서 페페로미아 화분을 들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나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려고 꽃 가게를 들렸다가 꽃은 오래 못 간다는 생각에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는 화분을 선물하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나와 화분처럼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좋아요.”


/


대학을 졸업할 때쯤 여러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었다. 대부분의 입사원서에는 힘든 일을 해결한 경험을 적으라는 요구사항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힘든 일을 이겨낸 본 적이 기억나지 않았다. 입사원서에 딱히 적을 말이 없었다. 이제 자기 자신을 스스로 건사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건 무작정 겁이 났다. 사회에 나갈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대기업 몇 군데에 원서를 써봤지만 대기업엔 승산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회사를 알아봤다. 기업 임직원 교육과 서평 책을 만든다는 컨설팅 회사가 눈에 띄었다. 입사 원서를 냈더니 바로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보고 바로 채용이 되었다.


첫 회사는 사장님과 팀장님 외에는 모두 20대 직원들이었다. 다들 또래라서 위계 관계로 힘들 일이 없었다. 회사엔 서평 팀과 컨설팅 팀이 있었는데, 나는 서평 팀이었다. 사장님이 책을 읽고 중요한 부분을 표시하면 그 부분을 요약해서 드리고, 사장님이 서평을 쓰면 ppt를 만들었다. 컨설팅 팀은 기업 컨설팅을 했다.

회사에 책이 많다는 점, 책을 다루는 일을 한다는 점이 참 좋았다. 그리고 신문에서나 보던 회장님이나 사장님의 인터뷰가 있을 때는 간접적으로나마 뵐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임금이 자주 밀렸다. 분위기는 좋았지만 급여를 받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두 번째로 들어간 회사는 영성과 예술을 주제로 하는 출판사였다. 고객 관리팀으로 들어갔다. 입사할 때는 고객 관리를 엑셀 수준으로 하고 있었는데, 고객 관리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했다. (이때 경우의 수와 알고리즘을 많이 사용했는데, 처음으로 수학을 헛 배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 내의 미술관과 공연장에서도 일했다. 갤러리에 상주하다 손님이 오면 그림 소개를 하고, 공연이 있으면 예약을 받고 공연 날 티켓 확인을 했다.

매달 한 번은 좌담회가 있었는데 작가님이나 영화감독님, 신부님 목사님들을 뵙고 이야기 들을 기회가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 회사는 나름 잘 다니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월급이 너무 적다며 회사를 그만두게 하셨다.


세 번째 직장은 부모님 집 근처의 학원이었다. 출판사에 다니면서 박봉을 받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빠가 집 근처 학원에 이력서를 넣으셨다. 그 학원에서는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고, 바로 채용이 되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을 가르쳤다. 원장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었다. 선생님들을 학군지에 보내서 교육을 받게 할 정도로 열심이셨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면 종일 아이들 생각을 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네 번째 직장은 강남의 학원이었다. 그 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의 추천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좋은 부모님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학원에서도 평이 좋았다.

그런데 학원 경영에 문제가 생기면서 동료 선생님들이 나가게 되었고 어수선해진 분위기에서 버티고 싶지 않아 나도 학원을 나왔다.


이 학원을 그만두고 나서는 혼자서 한 달간 유럽 여행을 했다. 나 자신이 부쩍 큰 느낌이었다.


다섯 번째 직장은 종합 학원이었다. 이 학원에서는 힘든 일이 많았다. 아이들끼리 폭력을 사용하는 일도 있었고, 학부모가 아이를 심하게 때려 아이가 가출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나를 늘 불만스럽게 바라보는 선생님이 한 명 있었다. 눈만 마주쳐도 움찔하게 되는 기분, 위축되는 마음이 정말 싫었다.  나에게 은근히 스킨십을 하려는 유부남 선생님도 있었다. 기분이 너무 더러웠다.  여태 껏의 학원은 수업만 잘하면 되는 분위기였는데, 이곳은 아이들도 학습태도가 좋지 않았고, 이상한 동료까지 있어서 심리적으로 많이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몇 달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심리적 고갈은 쉬이 회복되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 자신을 건사해야겠다는 생각에 작은 보습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소개팅을 정말 많이 했다.


나는 취집이 하고 싶었다. 내가 잘못도 안 했는데 나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나에게 찝쩍거리는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을 마주하며 일할 에너지가 나에겐 없었다. 나를 지켜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소개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나는 건 당연히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소개팅을 했다. 소개팅을 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려움을 이겨내기보다는 피하며 살았다는 것이 컴플렉스로 느껴지기도 했다.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한 것도 고생을 별로 안해보고 살아서인 것 같았고, 좋은 남자를 빨리 만나지 못하는 것도 고생을 별로 안하고 살아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엄마 친구 아들을 만나보겠냐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 남자와 나는 명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명동 성당 앞에서 기다리는데 결혼식 참석할 때나 입을 것 같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눈에 띄었다. 촌스럽고 어수룩해 보였지만 착해 보였다. 명동 교자에서 칼국수를 먹고 근처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부모님 친구 아들답게 자라온 환경이 비슷한 것 같았다. 나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데, 이 남자도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한다는 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모든 과목이 모두 수여도 우가 하나 있으면 공부를 못하는 거리고 생각을 했었다. 공부를 잘하는 건 전교 10등 안에 들어야만 잘한 거고, 그 외에는 모두 보통으로 공부하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공부를 잘 못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사람이며, 잘 난 게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하며 살아왔었다. 늘 얼굴에는 자신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었고, 성취감을 느낄 때 말고는 인생의 즐거움을 잘 못 느끼며 살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고등학교 때 밴드 활동을 재미있게 하느라 공부를 안 했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도 친구들과 너무 재미있게 놀았다고 한다. 너무 신기했다. 올 수가 아닌데도 행복할 수 있다고?  이 사람은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즐거운 추억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아 보였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헤어진 후, 나는 명동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종각역 반디 앤 루니스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그 남자가 또다시 눈에 띄었다.

‘이 남자, 책 좋아하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정말 좋은데!!’

이 남자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에 흥분되었다.


그래서 다음날도 만나고 그다음 날도 만났다. 만난 지 2주일 되던 날, 남자로부터 결혼을 전제로 만나보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다고 하자 남자는 바로 약현 성당에서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만난 지 두 달 반 만에 우리는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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