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량근로인데 정말 마음대로 일해도 되나요?
유연근무제도 중 선택근로 다음으로 최근에 많이 활용되는 제도가 있다. 바로 '재량근로제도'이다.
말 그대로 개인들의 재량으로 근로하는 것을 말한다. 사용자의 지시 없이 개인들이 알아서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근로시간에 대해서도 서로 약정한 근로시간을 그대로 인정한다. 더 많이 해도 더 조금해도 약정한 대로 인정한다는 것이 법 제도의 취지이다.
본 제도는 기존에는 법제도는 있지만 거의 활용되지 않다가 주 52시간 근로제도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예전에 주 52시간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던 때, 어느 유명 로펌 변호사님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변호사님, 그런데 변호사님들은 원래도 거의 밤 12시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많이 일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 52시간 되면 어떻게 하세요?" 이 질문에 변호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재량근로제가 있어서 문제없습니다. 재량근로 합의를 위해서 근로자대표 선출하고 근로자대표 합의를 해서 재량근로제를 도입했습니다." 법을 제일 잘 아시는 분들이니 활용도 잘하시는구나 생각했다.
물론, 재량근로를 아무 직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로 활용되는 분야는 연구개발, 방송 PD 등 누구나 들어도 원래 야근 많고 개인들의 업무 스케줄에 따라서 아주 유연하게 근무해야만 업무가 되는 분야들이다. 법으로 가능한 직무가 제한되어 있다. (물론, 변호사 등 전문직도 되는 것은 법도 시행령도 아니고 노동부 고시 (제2019-36호)에 의해 따로 정해져 있어서 일반적으로 법과 시행령만 봐서는 잘 모른다. : 회계-법률사건-납세-법무-노무관리-특허-감정평가-금융투자분석-투자자산운용 등 타인의 위임-위촉을 받아 상담-조언-감정 또는 대행을 하는 업무. 결국, 변호사, 회계사, 노무사, 감정평가사, 변리사, 법무사, 세무사, 금융투자분석사, 투자자산운용사 등의 전문직들이다.)
재량근로의 시행요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1) 법상 업무에 해당해야 하고, 2)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하면 된다. 법에서 업무의 성질을 볼 때 업무수행 방법을 근로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라서 회사와 근로자대표가 서면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이다. 그래서, '재량간주근로제도'라고도 한다. (물론, 간주근로시간제도는 외근이 많은 영업직 등에 적용하는 또 다른 제도라서 위에서 설명한 제도는 그냥 '재량근로제'라고 하는 것이 상호 간 오해가 없다.)
법상 해당 업무는
1) 신상품-신기술의 연구개발 (재료, 제품, 생산 제조공정 등의 개발 또는 기술적 개선, SW-게임-금융상품 등 무형의 제품도 포함), 인문사회 자연과학의 연구 (대학의 교수, 강사, 연구원 등이 입시 등 다른 사무를 같이 하더라도 연구가 절반 이상이어야 인정됨)
2) 정보처리시스템의 설계 또는 분석 업무 (정보의 정리, 가공, 축적, 검색 등의 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컴퓨터 HW, SW, NW, Data를 처리하는 프로그램의 설계 또는 분석) : 시스템 설계 분석, 콘텐츠 분석, UX/UI 개발, SW개발 (다만, 스스로 일하는 프로그래머가 대상이지, 타인 지시에 의해서 단순하게 프로그램 작성 수행자는 안됨.)
3) 신문, 방송 또는 출판 사업에서의 기사의 취재, 편성 또는 편집 업무 (기사의 내용에 대한 기획, 입안, 취재, 원고작성) : 단순한 교정업무, 방송기술 스태프는 제외. 또한, 신문-방송-출판업-뉴스공급업이 아닌 사보 편집자 등은 제외.
4) 의복-실내장식-공업제품-광고 등의 디자인 및 고안 업무 (전문성과 창의성 기반의 디자이너) : 단순 도면 작성, 제품 제작자는 제외
5) 방송 프로그램-영화 등의 제작 사업에서의 프로듀서나 감독 업무 (제작 전반을 책임지고 기획, 선정, 예산관리 등을 총괄하는 프로듀서, 스태프를 통솔 지휘하면서 현장에서 제작작업을 총괄하는 감독) : 음반, 음악, 연극, 콘서트, 쇼 등의 흥행사업 포함.
6) 위에서 설명한 업무에서의 전문직들 (자격증이나 면허 필수)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해야 하는 내용은 1) 대상업무, 2) 회사가 그 업무의 수행 수단, 시간 배분 등에 관하여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 3) 근로시간의 산정 이 주요 내용이다. 재량근로가 법적 효력을 가지기 위한 필수사항이다.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재량근로의 법적 효과는 서면 합의에 명시된 간주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명시한 근로시간이 1일 10시간이면, 8시간을 초과하는 2시간에 대해서는 연장근로수당이 발생한다. (야간이면 야간근로수당까지 발생) 근로자가 더 많이 일해도 근로자가 주장해도 또는 더 적게 일했다고 회사가 주장해도 소용없다. 간주된 근로시간이 바뀌지 않는다.
다만, 재량근로자 무효가 되는 경우도 있다.
1)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대상업무에 대한 해석이 틀려서, 법상 허용업무가 아닌데 재량근로를 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없게, 미리 법률 전문가들이나 고용노동부에 질의해서 허용업무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좋다.)
2) 또는 근로자대표 서면 합의서에 필수기재사항이 기재되지 않는 경우이다. 그래서 가급적 고용노동부 표준 계약서를 사용하면서 필요내용만 수정하는 것이 좋다.
3) 재량근로의 취지를 훼손할 정도로 업무수행이 일어나는 경우이다. 재량근로라서 업무수행 수단 등에 대해서 구체적인 지시가 상시 반복적으로 있어서는 안 된다.
재량성의 훼손 여부는 1) 업무지사가 업무수행 수단이나 근로시간의 배분에 관한 것인지? 2) 지시의 주기 및 구체성 정도, 3) 근로자의 재량에 대한 제한이 합리적인지, 4) 근로자의 실질적인 재량권 행사 가능성 등을 종합 고려해서 판단한다.
이쯤 되면, 회사가 재량근로자에게 아무것도 지시 못 하나요?라고 질문할 수 있다. 물론 '아니다. 필요사항은 지시할 수 있다.' 이슈는 "업무수단 및 근로시간 배분-결정에 대한 구체적 지시"이다. 업무의 내용이나 일하는 장소에 대한 포괄적 지시는 당연히 가능하고, 업무의 내용-목표-기한 등 기본적인 지시도 가능하고, 진행경과에 대한 확인-결과물에 대한 평가도 가능하다. 그리고 회사의 구성원이므로 질서-보안유지 등에 대한 지시도 가능하다. 결국, 업무진행에서 조사방법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출장-회의 횟수를 지정하고, 투입할 자원의 양과 질을 구체적으로 통제하고, 1일 단위 실제 근로시간을 측정하고 조정하는 등의 경우만 아니면 된다. 마치 비교하자면 도급과 유사하다. 업무를 맡겼으면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나 지시를 하지 않아야 하지만, 도급업무를 명확하게 해야 하고 완성물에 대한 평가는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재량근로자 무효가 된다면? 당연히 일반 근로시간 관련 법규정이 적용되어서, 1일 8시간을 초과한 (또는 약정 근로시간을 초과한) 근로시간은 모두 연장근로시간으로 계산해서 정산지급해야 한다. (물론, 재량근로 하에서는 실제 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운 상황이 많아서 근로자와 회사 상호 간 입증이 쉽지는 않다. 근로시간은 입증이 어려운 상황에서 노동부 근로감독 등을 통해서 확인 시에는 출입기록이나 엘리베이터 CCTV 등까지 공개청구를 통해 근로시간을 특정하기도 한다.)
실무적으로 재량근로를 도입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마도 1) 근로시간, 2) 초과근로에 대한 금전 보상일 것이다. 하루에 몇 시간 일한 것으로 봐줄 것인지, 그래서 얼마 줄 것인지이다. 근로시간은 아무리 재량근로라고 해도 주 52시간 제한을 있으므로 적당 범위에서 정하게 될 것이고 ( 예를 들면, 1일 10시간, 휴일 2시간 등 ) 수당이나 금전 보상도 이를 기준으로 정해지게 된다. 그런데, 업무의 특성상 이렇게 시간을 정하는 것도 애매한 경우도 있다. 사실상 특정시기에 근로시간이 많을 것이 이미 예정된 경우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집중 기간에 감독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하면, 실제 근로시간 이외에도 대기시간이나 이동시간 등이 애매하게 성립하게 되어 실제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렵고 이런 시간들을 모두 산입 하면 주 52시간은 훌쩍 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근로시간은 1일 8시간으로만 정하고, 나머지 초과되는 시간을 '시간으로' 산정하지 않고 '금전'으로 산정하여 일정 수당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재량근로 합의의 정석은 아니지만 시장 상황을 반영한 결과이고 근로자대표와 합의했으면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