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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Sep 26. 2023

이상한 전화

S#1  

저녁식사를 하는 중인데 계속 전화가 걸려옵니다.

“치킨은 잘 받으셨죠? 돈은 필요 없고 그냥 맛있게 드시면 됩니다.”

치킨은 시킨 적도 없고, 더구나 받은 적도 없는데 맛있게 먹으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내가 무슨 치킨이냐고 묻기도 전에 전화가 뚝 끊어집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려니 생각하고, 멈췄던 식사를 다시 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야, 씨발아. 공짜치킨을 처먹었으면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또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습니다. 화가 나서 전화번호가 찍힌 그 번호의 버튼을 누릅니다. 없는 번호라는 멘트가 나옵니다. 다시 눌러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그런데 찜찜한 구석이 있습니다. 코로나가 한창 퍼질 즈음에 치킨배달을 하면서 슬쩍슬쩍 한 두 조각씩 빼먹었거든요. 그래도 닭다리와 날개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금방 표시가 나거든요. 다시 전화벨이 울립니다. 나는 아무런 말없이 전화를 받습니다.

“쫄았냐? 남의 껀 코딱지 하나라도 훔쳐 먹으면 안 되는 거야. 넌 앞으로 두고두고 시달릴 거다. 좆된 거지.”

발신자는 일방적으로 끊습니다. 혹시나 싶어 다시 발신자 번호를 눌러보았지만 없는 번호라는 말만 나옵니다. 도대체 이건 뭔가요? 밥맛이 싹 달아났고, 잠도 오지 않습니다. 누구한테 용서를 빌어야 하는 걸까요? 또 전화벨이 울립니다. 그 번호인데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끊어진 뒤, 문자가 왔습니다.

‘ㅋㅋㅋ. 남의 걸 훔쳐 먹은 자의 시간은 멈춰 있다!’     



S#2  

술에서 깨어보니 내 손에 여자 신발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빨강하이힐. 뭐지? 싶었는데 핸드폰으로 문자가 옵니다.

‘어젯밤, 너무 좋았어. 환상적이었어. 내 지스팟을 찾아준 남자는 너뿐이야. 또 볼 수 있는 거지?’

이게 꿈인가요? 아님 진짜 현실인가요? 빨강하이힐이 내 손에 쥐어 있는 것도 그렇고, 여자랑 잔 적도 없는데 지스팟을 찾아주다니. 머릿속에서 별의별 생각이 득시글거립니다.  

빨강하이힐은 어디서 가져왔고, 누구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으니 돌려줄 수 없지만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여자인 게 분명하니 왠지 모르게 구미가 당겼습니다. 혹시 나한테 잘못 보낸 문자라고 해도 이게 어떤 인연의 시작일 수도 있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답장을 보냈습니다. 얼굴부터 확인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좋았다니 다행입니다. 근데 내가 단기성 기억상실이 있어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진 좀 보내주세요.’

이내 사진이 왔습니다. 와우, 죽이는 얼굴입니다. 한마디로 팜므파탈! 하느님이 이제 섹스를 맘껏 하라고 왕창 밀어주려나 봅니다.

‘오빠, 이따가 밤 8시에 인사동 스타벅스에서 봐. 오늘은 내가 쏠게. 꿀타래가 먹고 싶네.’

푸시 업을 했습니다. 인삼드링크도 두 병 마셨습니다. 텐션을 높여놓아야 하니까요. 지갑 속에 실탄도 넉넉히 준비해 뒀습니다. 그때 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지금 병원인데 진료비를 내려고 하는데 지갑을 잃어버린 거 같아. 급해서 그런데 이따 만나서 줄 테니까 8만 원만 보내줘. 이 병원 계좌로. 강내과. 하나은행. 383-820186-18503’

찜찜했습니다. 병원이름이 있는데도 혹 사기인가 싶었지만 사진으로 얼굴을 확인했고, 전번도 있고. 단지 상대가 나를 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건데. 순간 뭐든 걸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틱하게 인연이 만들어질 수 있고, 만에 하나 사기라고 쳐도 80만 원도 아니고 8만 원인데. 더구나 병원 계좌인 걸 보면 거짓말은 아닌 듯싶었습니다.

흔쾌히 송금했습니다. 인사동 스타벅스에서 세 시간을 기다렸지만 그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핸드폰 전원은 내내 꺼져 있었구요. 내가 참 만만한 모양입니다. 병원을 들먹여서 사기치기 좋게 이름도 최적화 돼 있네요. 화가 나서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을 퍼마시고 간신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키 번호를 눌러 문을 열려는 때, 옆집 문에 붙어있는 종이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신발장을 청소하려고 밖에 내놓았던 신발을 가져가신 분, 돌려주세요. 빨강 하이힐, 그거 한쪽만 가지고는 쓸데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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